기사입력 2016-11-04 19:36:35
기사수정 2016-11-04 19:36:35
(29) 음악에서 배우는 정치… 협연하는 마음으로 협치를
최순실의 국정개입 의혹이 불거지면서 10월이 시리게 지나갔다. 남은 11월과 12월은 일일[11]이 국정 시비[12]를 가리느라 온 나라가 들썩일 전망이다. ‘11’이란 글자가 주는 이미지는 가지 하나 없는 먹통 나무 두 그루가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이다. 그 누구도 없이 쓸쓸하게 서 있는 고독한 두 사람의 모습을 닮았다. 순실의 시대는 상실의 시대였다. 국격은 낙엽과 함께 땅에 떨어졌다. 어찌할거나. 다들 자괴감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단다. 기대가 절망으로 사랑이 미움으로 전락하면 그 절망과 미움은 평상심에서 오는 절망과 미움보다 훨씬 더 크다. 환부는 아무리 도려내도 흉터는 남을 터.
2016년 4분기의 키워드는 아무래도 ‘비선실세(祕線實勢)의 국정농단(國政壟斷)’이 아닐까. 비선실세란 ‘비공식적으로 비밀리에 연결되어 있는 실제 권력자’를 의미한다. 그런데 국정농단의 뜻에서는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필자도 무너졌다. ‘국정을 농락(籠絡)하고 청와대 문고리를 단속(團束)한다’는 뜻에서 ‘농단(籠團)’으로 쓰거나, 나랏일을 굿판으로 생각하고 장난을 쳤으니 ‘희롱할 롱(弄)’ 자에, 세상과 소통을 끊었으니 ‘끊을 단(斷)’ 자를 써서 ‘농단(弄斷)’으로 쓰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해답은 <맹자>에 있었다. ‘언덕 롱(壟)’ 자가 들어간 ‘농단(壟斷)’으로 쓰며 ‘이익이나 권리를 독차지함’의 뜻이었다. 비선실세가 ‘깎아 세운 듯한 높은 언덕’ 곧, ‘농단(壟斷)’에서 독수리처럼 국정을 내려다보며 전횡(專橫)을 했으니 그럴듯하다.
비밀(祕密)이란 과연 있을 수 있을까. 비밀에 숨어 있는 비밀을 캐 보기로 한다.
비밀의 첫째 비밀은 ‘비(祕)’와 ‘밀(密)’ 두 글자에 공통으로 ‘반드시 필(必)’ 자가 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비밀을 만들 때의 양자의 처지에서 보면 비밀은 서로가 ‘반드시 지키자’고 약속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비밀은 만들었다면 무덤까지 꼭 가지고 가야 한다.
비밀의 둘째 비밀은 ‘귀신 비(祕)’ 자에 있다. 비밀은 아무리 밀봉해도 귀신은 훤히 다 알고 있으므로 이 글자를 쓴다. 비밀은 둘 중의 한 사람이 피해를 본다고 생각하거나 배신을 하면 귀신같이 세상에 밝혀지고 만다. 귀신 곡할 노릇이지만.
그래서 인간은 ‘귀신 비(祕)’ 자가 무서워 ‘향기로울 비(秘)’ 자로 슬쩍 바꾸어, 비밀(祕密)을 비밀(秘密)로 쓰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은 먹을거리[禾] 앞에서는 비밀의 성을 쉽게 무너뜨리는 경향이 있다. 결국, 비밀은 언젠가는 들통나고 만다는 얘기다.
다음은 비선(祕線)의 ‘선(線)’의 비밀을 열어보고자 한다. 서예에서는 ‘선(線)’이라는 단어 대신에 ‘획(劃)’을 주로 사용한다. 선은 평면적이지만 획은 입체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선은 ‘금’, ‘줄’, ‘실’ 등의 의미로 부피가 없지만, 획은 두께와 부피가 있는 단어이다. 선은 직선, 곡선이라 할 때처럼 두 면의 경계를 뜻하지만 ‘획(劃)’은 글씨나 그림에서 붓이나 칼로 그은 선이나 점을 일컬으며, 자획(字劃)이라고도 한다. ‘획(劃)’ 자를 보면, 붓의 전신은 칼임을 알 수 있다. 칼로 글자나 그림을 새긴다는 뜻이 되겠다. ‘획을 긋다’라는 말은 어떤 범위나 시기를 분명하게 구분 짓는다는 뜻이다.
결과적으로 선은 획보다 약하여 지워지거나 끊어지기 쉽다. 아무리 비선이라 하더라도 끝내는 노출되고 마침내 끊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정에서는 선으로는 안 된다. 더구나 비선은 죽음이다. 적어도 획 자를 사용해야 한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국정 운영의 동력을 잃어버린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을 위한 획기적(劃期的)인 안을 기획(企劃)하여 건설적인 방향으로 계획(計劃)을 세워야 할 것이다.
박근혜 정권의 숨은 힘, 비선실세의 실체가 드러나자 이 땅의 단풍도 화려한 민낯을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한 채 빛을 잃고 사라져 간다. 단풍의 단심(丹心)이 촛불로 화신(化身)한 것인가. 촛불집회는 2008년 이명박정부 시절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때 이후 8년 만의 일이다.
10월의 마지막 날, 서울엔 아침부터 흐리고 비가 내렸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대한 ‘분노의 촛불’이 넘실거렸음에도 날씨는 더 차고 바람까지 거들었다. 뭔가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날, 외로운 사람에게는 스팸 메일도 반갑더라는 시인 친구의 말이 떠올라, 그와 함께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을 찾았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Valery Gergiev, 1953~)의 현란한 지휘 아래 펼쳐지는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오케스트라(Mariinsky Theatre Orchestra)의 관현악과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빚어내는 피아노 협주곡을 듣기 위해서다.
무대가 어두워졌다 밝아오면 관객의 박수와 함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속속 자신의 자리에 들어와 앉는다. 수석 오보에 주자의 가이드에 따라 모든 악기의 튜닝이 이어지고, 잠시 태고의 침묵이 흐른다. 기다림의 절정의 때에 지휘자 게르기예프가 만장의 박수를 받으며 무대 중앙에 등장한다. 게르기예프는 필자와 비슷한 나이에다 소갈머리는 없고 주변머리만 있는 두상도 닮아서 더욱 친근하게 느껴진다. 1부에서는 프로코피예프의 교향곡 1번 D 장조, 작품 25 ‘고전 교향곡(1917)’으로 문을 열었다. 피아노 없이도 명확한 선율을 유지하며 15분 정도 진행되는 작은 교향곡이었다.
드디어 게르기예프가 선택한 협연자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순서이다. 연주곡은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협주곡 1번 C단조 작품 35’. 그는 원주 출신의 순수 국내파이지만 한국 피아노의 위상을 국제적으로 드높이고 있다. 어릴 때부터 독서를 즐겼던 그는 젊은 나이에 책을 펴낸 음악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강렬한 타건에 환상적인 테크닉, 다져진 몸에서 터져 나오는 충일한 감성을 담은 연주로 순식간에 모든 관객의 마음은 빠져들고 말았다.
2부에서도 역시 프로코피예프 작곡의 ‘로미오와 줄리엣(1935)’ 모음곡을 연주했는데, 사랑의 스토리를 관현악기로만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러시아다운 너른 감성이 묻어났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이나 영국 출신의 네빌 마리너(Neville Marriner)와 같은 지휘자는 지휘봉을 사용하는데, 게르기예프는 지휘봉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지휘봉을 사용하지 않는 게 아니라, 기다란 열 손가락이 모두 지휘봉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바쁜 지휘자’, ‘현존하는 최고의 지휘자’로 평가받는 게르기예프의 몸 가락에서 붓 가락을 느끼는 순간 어느덧 정규 공연이 끝나고 앙코르 박수가 이어지고 있었다.
지휘자의 지휘에 따라 수십 명의 연주자가 일사불란하게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치도 가끔은 저런 모습을 보여줄 수 없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당, 정, 청, 군, 관, 민이 서로 다른 소리를 내면서도 조화와 균형을 이룰 방법은 없을까. 하기야 정치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마저 대선을 앞두고 클린턴과 트럼프 간에 요란한 싸움을 하는 것을 보면 오케스트라 민주주의는 마음속의 이상일 뿐이란 생각이 든다. 자유, 평화, 인권, 기회, 선거 등의 아름다운 세상, 정녕 민주주의가 고장 난 걸까. 일찍이 고운 최치원이 가야산에 칩거하면서 홍류동 계곡 물소리로 저물어 가는 신라의 잡음을 막은 뜻을 알 만하다. 세상의 소음을 잠시나마 음악으로 막아 보고자 했으나 국기 문란 사태에서 오는 국민의 울분과 원성은 이미 걷잡을 수 없는 함성이 되었다.
이런 난국에 하룻저녁의 음악 감상을 청복(聽福)으로 치부하면 욕먹겠지.
권상호 서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