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 "출연금 배경 전수조사"… 총수 줄소환 사태 오나

재계로 번진 ‘최순실 불똥’ 현 정권의 비선실세로 지목된 최순실(60·구속)씨가 일으킨 광풍이 국내 대기업으로 몰아치고 있다. 검찰이 미르·K스포츠에 출연금을 낸 대기업 53곳에 대한 전수조사를 선언하면서 기업 총수들은 줄줄이 검찰청사로 불려올 처지가 됐다. 일부 총수는 뇌물 성격이 짙은 기금을 출연한 정황이 포착돼 형사처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 중인 검찰 특별수사본부 관계자들이 8일 서울 송파구 대한승마협회 사무실에서 압수한 물건을 담은 상자를 차에 싣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 ”기업들 출연금 낸 배경 전수조사”

검찰 고위관계자는 8일 “(기업들의) 뇌물죄를 안 보겠다고 한 적이 없다. (혐의가) 나오면 한다. 법리 고민을 많이 하고 있고 선을 긋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또 “의혹마다 상황이 다르다”며 “출연금 배경을 전수조사해 세부사항을 맞춰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씨 재단에 기업들이 낸 출연금은 크게 보면 △갈취대금 △청탁용 뇌물 △보험금으로 나눠볼 수 있다.

청와대와 최씨 일당의 압력에 못 이겨 순수하게 ‘삥 뜯긴 것’(갈취대금)에 불과하다면 피해자로 취급돼 기소를 피할 수 있다.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구속된 안종범(57·구속)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 최씨의 범죄가 무거워질 뿐이다.

구체적 청탁용 뇌물이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기업 관계자 역시 뇌물 제공을 이유로 처벌받을 수 있다.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적용돼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수뢰액 1억원 이상)이라는 중벌을 받을 수 있다.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 중인 검찰 특별수사본부 관계자들이 8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압수한 물건을 담은 상자를 들고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 역시 셈법이 복잡해진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기업들에 기금을 내라고 종용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박 대통령에 대해 ‘제3자 뇌물제공’ 혐의를 적용할 수 있게 된다. 제3자 뇌물제공은 공무원이 ‘부정한 청탁’을 받고 뇌물 제공자가 ‘제3자’에게 뇌물을 건네도록 하면 성립된다. 이렇게 되면 박 대통령을 제3자 뇌물제공의 ‘주범’으로 처리할 것인지를 놓고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갈취대금과 뇌물 사이의 회색 지대에 놓인 게 보험금이다. 기업 측에서는 “청탁할 마음은 없었지만 혹시나 불이익을 볼까봐 보험용으로 기금을 냈다”고 항변할 수 있다. 보험금 성격으로 낸 돈이라면 뇌물죄로 처벌하기 어렵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검찰이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20)씨를 특혜 지원했다는 의혹을 받는 삼성전자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작한 8일 오후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시민단체 회원들이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하상윤 기자
◆숙원사업 추진 대기업 수두룩


재단 출연금 제공 시점을 전후해 대부분의 대기업은 총수일가 문제, 검찰과 국세청 조사, 숙원사업 추진 등 숙제를 하나씩 품고 있었다. 기금 출연과 최씨 일가 지원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의 그룹 승계와 헤지펀드의 공격을 풀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부영과 아모레퍼시픽은 세무조사를 받고 있었고, 롯데는 검찰는 수사를 앞두고 있었다. 이 중 검찰은 부영에 대해 뇌물죄 적용을 가장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무조사를 노골적으로 무마하려 한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SK와 CJ는 그룹 총수의 특별사면 여부가 당면과제였다. 두산·신세계 그룹은 면세점 사업 진출을 추진하고 있었다. 다만 일부 기업은 현 정권에서 ‘미운털’이 박혔다는 정황이 뚜렷한 만큼 정상 참작의 여지가 있다.

한진그룹은 돈을 적게 냈다가 조양호 회장이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에서 물러났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한진해운 역시 정부 지원이 있을 것이란 경제계의 예상을 깨고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CJ는 청와대에서 총수 일가의 퇴진을 종용받은 정황이 나오는 등 현 정권 최대의 피해자란 평가가 많다.

박현준 기자 hjunpar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