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취재] "국정 공백 원한다"…'평등 집회' 여성들의 작지만 큰 울림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하면 국정 공백이 우려된다지만 저는 국정 공백을 원합니다. (박 대통령이)더 이상 아무 일도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단 하루도 싫습니다.”

12일 오후 3시쯤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열린 ‘차별과 혐오 없는 평등 집회’에서 연단에 오른 한 여성이 마이크를 잡고 이같이 말하자 박수와 환호성이 쏟아졌다. 동이 트기도 전인 오전 6시 버스를 타고 부산에서 왔다는 이 여성은 “우리 여성들은 박 대통령을 여성 대통령으로 여기지 않는다. 여성 대통령이라면 성차별 해소와 여성 인권 증진에 힘써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2016 민중총궐기’를 앞두고 전국여성연대,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9개 여성 단체들이 개최한 이 사전 집회에는 전국 각지에서 상경한 여성 약 700명(주최 측 추산)이 자리를 메웠다.

이들은 “여성들은 모든 역사 속에서 투쟁과 저항의 순간을 함께했다”며 “차별 받지 않고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 룰을 지키는 사람이 더 행복한 사회, 민주주의와 평등, 정의가 실현되는 나라를 위해 모였다”고 밝혔다. 평등 집회의 원칙으로는 △여성·장애인·청소년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비하가 없는 집회 △반말을 사용하거나 폭력적인 행동이 없는 집회 등이 제안됐다. ‘민중총궐기에 나온 것은 이 모든 의지를 우주에 담아 정경유착, 재벌 특혜, 민생 파탄의 악순환을 끊어내는 데 이바지하기 위해서’라는 재치 있는 내용의 손팻말을 든 여대생부터 자녀의 손을 잡고 나온 중년 여성까지 면면이 다양했다.

여성들은 저마다 마이크를 잡고 자유 발언을 이어갔다. 대구에서 왔다는 한 여성은 “박 대통령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고 친구(박 대통령 40년 지기 최순실씨)가 있는 감방으로 갔으면 좋겠다. 어제 대구에서 열린 시국대회에 5000명이 몰렸다”고 말했다. 이 여성은 11일 대구 2차 시국대회에서 ‘박근혜 집은 감방 감방, 박근혜 밥은 콩밥 콩밥’이란 새로운 구호가 나왔다면서 박 대통령에게 완전히 등을 돌린 대구의 민심을 전했다.

한국여성의전화 회원 남슬아씨는 “우리 여성들은 연결될수록 강하다”며 “함께 분노하며 여성 인권을 말하고, 여성 등 소수자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는 정권을 만들자”고 외쳤다.

집회 도중 한 남성이 난입하는 소동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 남성은 나가라는 참가자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집회 현장을 캠코더에 담던 여성에게 초상권을 침해했다면서 큰소리를 치다가 한 여성 참가자를 성추행하기까지 했다. 이 남성은 결국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 의해 밖으로 끌려나갔다.

평등 집회를 이어간 여성들은 서울시청광장으로 행진해 ‘2016 민중총궐기’에 합류했다. 박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올해 민중총궐기에는 주최 측 추산으로 서울에만 100만명에 달하는 촛불 인파가 운집했다. 주최 측은 서울 외에도 부산 3만5000명, 광주 1만명 등 전국 10여곳에서 6만명이 한마음으로 박 대통령 하야를 부르짖었다고 밝혔다. 군사 정권 퇴진, 직선제 개헌을 쟁취한 1987년 6월 항쟁 당시 최대 규모(100만여명)를 훌쩍 넘어선 것이다.

글·사진=박진영 기자 jy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