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윤회 문건에 이미 최순실 거론됐다

‘권력 서열 1위는 최순실’ / 문건초안 관련 내용 적시 / 청와대, 2014년 1월 초 / 최씨 국정농단 인지 가능성
세계일보는 2014년 11월 ‘정윤회 문건’ 보도를 통해 비선 실세의 국정개입 의혹을 제기했지만 청와대와 검찰은 실체규명이 아닌 문건 유출 문제에만 집중했다. 검찰은 수사 1개월 만에 ‘문건 내용은 허위’라고 결론짓고 비선 실세 문제를 제기한 이들에게 오히려 문건 유출 혐의 등으로 사법적 책임을 물었다. 하지만 2년이 채 가기도 전에 최순실씨에 의한 국정농단 사실이 드러나면서 당시 수사가 ‘부실수사’를 넘어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을 키운 ‘범죄적 수사’였음을 증명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세계일보는 당시 문건에 언급된 최순실씨 관련 내용은 보도하지 않았다. 문건의 주된 내용이 정윤회씨 의혹이었기 때문이다. 최씨의 국정농단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상황이어서 문건의 신뢰성, 작성과 보고 전말, 배경 등 정씨 의혹 취재에 집중했다. 최씨에 대한 사실 확인과 추적 취재도 조직적인 방해 등으로 쉽지 않았다. 청와대와 검찰은 그러나 이 문건을 토대로 최씨 관련 의혹을 확인하고 초기 대응을 할 수 있었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 우병우 당시 민정비서관, ‘문고리 3인방’ 등은 조직적으로 관련 사실을 은폐해 화를 키웠다. 이에 특별취재팀은 당시 문건 취재팀의 도움을 받아 정윤회 관련 문건을 전면 공개하기로 했다.

세계일보가 2014년 11월 비선실세의 국정개입 의혹을 제기하며 공개한 청와대 문건(정윤회 문건)에는 최순실 파문과 관련해 ‘권력 서열 1위는 최순실, 2위는 정윤회, 3위는 박근혜’라는 구절이 적시돼 있었지만 당시 청와대는 이를 묵살한 것으로 드러났다.

청와대는 문건이 보고된 2014년 1월6일 전후, ‘정윤회 문건’을 수사한 검찰은 수사에 착수한 그해 12월 전후 이미 최씨의 존재와 국정농단 가능성을 인지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당시 문건을 ‘찌라시’라고 규정하며 사건 프레임을 설정한 박근혜 대통령이나 ‘누설은 쓰레기 같은 짓’이라며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 김기춘 전 비서실장, 문건유출 수사로 몰아간 우병우 당시 민정비서관에 대한 관련 수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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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특별취재팀이 13일 관련 문건을 검증한 결과 2014년 1월6일 청와대에 보고된 공식 문건 등에는 본지가 이미 공개한 정씨의 인사 및 국정개입 첩보와 함께 최씨도 거론돼 있었다.

문건의 ‘동향 보고 대상자 인적사항’란에는 정씨를 적시하면서 “고 최태민 목사의 5녀 최순실의 부(夫)”라고 기록돼 있었다. 이와 함께 ‘최근 동향’란에도 “정윤회는 한때 부인 최순실과의 관계 악화로 별거했지만 최근 제3자의 시선을 의식해 동일 가옥에 거주하면서 ‘각방’을 사용하고 있다고 함”이라고 최씨가 거론돼 있었다.

특히 공식 문건 작성을 위한 ‘초안’ 성격의 ‘시중여론’에는 정씨 관련 첩보와 함께 최씨의 국정개입이나 그 영향력을 추정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여기에는 정씨와 ‘문고리 3인방’을 포함한 이른바 ‘십상시’들과의 모임에서 “이 나라 권력 서열 1위는 최순실, 2위는 정윤회, 3위는 박근혜”라는 ‘극치의 말’이 오갔다고 적혀 있었다.

‘권력 서열 1위 최순실’ 구절은 박관천 전 경정(전 청와대 행정관)이 검찰 조사에서 거론하며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청와대와 검찰은 이들 문건을 통해 비선실세의 존재 또는 국정 개입이나 농단 가능성을 알 수 있었음에도 문건유출에만 수사력을 집중해 본질 규명에 실패했다. 이에 따라 국가적 위기를 낳은 최씨의 국정농단 사태를 예방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은폐 또는 방조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특별취재팀=김용출·이천종·조병욱·박영준 기자 kimgij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