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달러·엔저'… 한국, 운신 폭 좁아 걱정 태산

‘트럼프 쇼크’ 계기 외환시장 불안 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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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달러’의 시대가 도래한 것인가. 국제 금융시장에서 ‘트럼프 쇼크’ 후 미국 달러화가 주요국 통화에 대해 연일 강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9일 미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한 도널드 트럼프 당선자가 강력한 보호무역주의를 주창하는 데다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내달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맞물린 탓이다. 이에 원·달러 환율도 연일 치솟아 14일에는 4개월여 만에 달러당 1170원대를 돌파했다. 환율 상승은 수출기업의 가격 경쟁력 개선으로 이어지는 만큼 부진에 빠진 우리 수출에 ‘가뭄의 단비’라 할 만하다. 하지만 수출 경쟁국인 일본 엔화도 덩달아 약세 흐름을 보여 그 효과가 반감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신흥국 자본 유입으로 한때 급등한 엔화가치…다시 하락세로 전환

엔·달러 환율은 14일 들어 달러당 107엔대에 거래되고 있다. 일본 도쿄 외환시장에서 오후 3시30분 현재 달러당 107.6엔을 기록했다. 엔·달러 환율이 107엔 중반까지 뛴 것은 지난 6월8일 이후 처음이다. 이날 장중 한때 107.9엔까지 올라 108엔선에 육박하기도 했다. 정성윤 현대선물 연구원은 “달러 강세로 엔화 약세가 나타나는 형국”이라며 “재정 확대와 보호무역을 내세우는 트럼프의 당선으로 미국의 금리인상 속도를 가파르게 할 수 있다는 우려가 시장에 반영됐다”고 분석했다. 이어 “달러화 강세 국면이 조금 더 진행될 개연성이 있는 만큼 109엔선까지 상승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본다”며 “109엔선이 뚫리면 일시적으로 111엔대도 가능해 보인다”고 내다봤다.

 앞서 일본은 2014년 10월 2차 양적완화 정책을 통해 엔·달러 환율을 110엔선 위로 끌어올리면서 ‘엔저 특수’를 맞았다. 세계의 주요 시장을 두고 일본과 경쟁해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엔화 가치 하락은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트럼프 당선 직후인 지난 9일 엔화 가치가 크게 올라 101엔대까지 환율이 떨어져 반사이익을 기대했던 지난주와 비교하면 격세지감마저 든다. 당시 노무라증권은 엔·달러 환율이 90∼95엔대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안갯속 트럼프발 경제정책…환율관찰대상국 한국은 운신 폭 좁아

원·달러 환율은 4거래일 연속 상승해 1170원선을 넘어섰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직전 거래일보다 7.1원 오른 달러당 1171.9원으로 마감했다. 종가 기준으로 1170원대를 넘어선 것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가결의 영향으로 환율이 급등했던 지난 6월28일(1171.3원) 이후 4개월 보름 만이다. 지난 9일 이후 4거래일 동안 40원 가까이 올랐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일본과 한국 모두 대미 무역흑자국이긴 하지만 보호무역주의 강화에 원화가 더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시장은 보고 있다”며 “내수가 큰 일본에 비해 우리는 대외의존도가 높고 안보 문제도 취약하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라고 전했다.

 트럼프 쇼크와 더불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라는 내부 정치적 리스크까지 더해져 단기적으로 1180원대까지,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1200원선도 넘볼 수 있다는 게 시장의 전언이다. 외국인 투자자가 주식과 장기채권 시장에서 달러로 돈을 바꿔 빠져나가는 것도 환율 상승세를 부추기고 있다.

 다만 환율이 급격하게 오르면 자본유출을 우려한 정부가 속도 조절에 나설 것으로 보이는 만큼 폭등세를 보이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국제금융발전심의회를 마치고 기자들을 만나 “지금 같은 시장의 반응은 예상했던 것으로 다른 신흥국도 비슷한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향후 환율 대응에 대해서는 “너무 급격하게 변하면 스무딩 오퍼레이션(미세조정) 대응도 할 것”이라며 “이런 원칙대로 대응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문제는 한국이 지난 4월과 10월 미국 재무부에 의해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지정돼 외환시장 변동성에 따른 운신의 폭이 넓지 않다는 점이다. 그만큼 외환당국의 미세조정을 통한 시장 개입이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전승지 연구원은 “조작국은 아니지만 관찰대상국으로 포함되면서 운신의 폭이 좁아진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달 국제유가와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서 수출입물가는 큰 폭으로 상승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0월 수입물가지수(2010년 100 기준)는 77.87로 집계돼 전달에 비해 4.3%나 증가했다. 지난달 수입물가의 상승 폭은 2010년 12월(4.5%) 이후 5년10개월 만에 최대다. 지난달 수출물가지수는 80.53으로 9월(78.05)보다 3.2%나 급등했다. 2009년 2월(4.8%) 이후 7년8개월 만에 가장 많이 올랐다.

염유섭 기자 yuseob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