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범 “박 대통령, 미르재단 설립 지연에 역정”

검찰, 안종범 진술 확보 / CJ 부당인사 개입 의혹 / 조원동 자택도 압수수색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 중인 검찰이 지난해 미르재단이 박근혜 대통령의 채근으로 허겁지겁 출범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이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 독려를 위해 독대한 대기업 총수가 당초 알려진 7명보다 훨씬 더 많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지난해 10월 초 박 대통령이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던 안종범(57·구속) 전 정책조정수석에게 미르재단 설립 준비 상황을 물었으나 실무 준비가 거의 되지 않은 사실을 알고 역정을 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14일 전해졌다.

미르재단은 박 대통령의 독촉이 있은 직후인 지난해 10월27일 정식 출범했다. 재단 설립 과정에서 정부세종청사의 문화체육관광부 직원이 직접 서울로 출장을 가 관련 서류를 받고 인가를 내주는 등 무리한 것도 박 대통령의 닦달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박 대통령은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에 앞서 지난해 7월24일 청와대로 대기업 총수 17명을 불러 오찬을 겸한 공식 간담회를 가졌다. 이들 중 7명은 간담회와 별개로 박 대통령과 개별 면담을 가졌다고 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등 재계 서열이 높은 대기업 총수들이 대상이었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이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에 대기업들이 적극 참여해야 한다”며 모금을 독려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안종범(구속)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14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도착해 교도관에 이끌려 조사실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재계 3위 SK는 당시 최태원 회장이 특별사면을 받기 전이라 김창근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 대신 간담회에 참석해 박 대통령과 독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최 회장이 지난해 광복절 특사로 출소한 뒤 올해 2월 박 대통령과 독대한 것으로 이날 확인됐다. 미르재단이 출범한 후에도 박 대통령과 재벌 총수가 독대한 사실이 드러난 만큼 박 대통령과 개별 면담을 한 대기업이 알려진 것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검찰은 박 대통령이 재단 설립에 관여한 흔적이 나오거나 재벌 총수 독대 과정에서 출연 대가로 해당 대기업의 ‘민원’을 들어준 사실이 드러나면 제3자 뇌물수수죄를 적용하고 관련 대기업 총수는 뇌물공여죄로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뇌물죄 적용 여부 등과 관련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채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현준 기자 hjunpar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