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강국의 길을 묻다] ‘트럼프 시대’… 대북 선제공격 가능성은

‘4월 전쟁설’ 등 위기감 고조… 북핵 위협 지속 여부가 관건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북·미 관계가 안갯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트럼프 당선자는 선거 과정에서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인 ‘전략적 인내’를 강하게 비판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대안은 제시하지 못한 상태다. 집권 초기 북핵 문제를 대화로 풀어가려 했던 오바마 대통령처럼 트럼프 당선자도 대리인을 내세워 북한과의 대화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런 시도가 불발되고, 북한의 대미 위협이 지속된다면 핵 능력 제거나 인권 문제를 빌미로 군사적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오바마 행정부 시절보다 훨씬 높아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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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대북 선제타격에 나설까

트럼프 당선자는 과거에도 북한 핵시설에 대한 ‘정밀타격’(surgical strike)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2000년 개혁당 후보로 출마했을 때 저서 ‘우리에게 걸맞은 미국’에서 북핵 문제를 거론하며 “경험 있는 협상가로서 볼 때 북한이 핵·미사일을 시카고와 로스앤젤레스, 뉴욕에 떨어뜨릴 능력을 갖추게 되면 협상은 소용이 없다는 것을 말해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핵전쟁을 원하지 않지만 협상이 실패하면 북한이 실질적 위협을 주기 전에 이 같은 무법자들을 겨냥한 정밀타격을 지지한다”면서 “북한의 핵 협박과 미국의 파괴를 막을 수 있다면 대통령으로서 재래식 무기를 이용해 북한의 목표물을 타격하는 명령을 내릴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외교안보정책을 맡을 국무장관·국방장관 후보로 거론되는 이들은 모두 강경파 일색이다. 국무장관 후보인 존 볼턴 전 유엔주재 대사와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 국방장관 후보인 스티븐 해들리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은 네오콘(신보수주의자) 계열이다. 북한에 보다 강경한 자세를 보일 가능성이 훨씬 커졌다고 할 수 있다.

주한미군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주한 미8군은 최근 북한이 공격할 경우 국내 거주 미국 민간인을 주일 미군기지로 대피시키는 ‘커레이저스 채널’(Courageous Channel) 훈련을 실시했다. 주한미군은 매년 한두 차례 자국 민간인을 일본 등지로 피신시키는 비전투요원 소개(NEO) 훈련을 실시해왔다. 그러나 올해는 2009년 이후 7년 만에 처음으로 일부 민간인을 주일 미군기지까지 실제로 이동시키는 훈련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심각하게 판단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주한미군 수뇌부 발언도 주목된다. 미 8군사령관 토머스 밴달 중장은 지난 8일 한 강연회에서 “한·미동맹은 어느 때보다 강력하고 북한의 어떤 위협에도 대응할 준비가 돼있다”고 밝혔다. 한미연합사령관 빈센트 브룩스 대장도 1일 괌에서 “김정은 정권이 핵·미사일 도발이라는 현재의 방향으로만 나아가면 북한은 향후 발생하는 결과에 대해 책임질 준비를 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선제타격 시나리오는


지난 6월 미국의 민간 군사정보회사 스트랫포(STRATFOR)는 ‘무력을 통한 핵 프로그램 대응’(Dealing a Nuclear Program by Force)이라는 북핵 정밀타격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는 북한 핵능력 제거에 필요한 작전과 투입 전력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최우선 공습 목표는 5MWe 원자로가 있는 영변 핵시설이다. 황해북도 평산의 우라늄 광산과 스커드·노동·무수단·KN-14 등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탄도미사일 기지 및 이동식발사대(TEL),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탑재 잠수함이 정박한 신포항과 주요 공군기지도 공습 대상이다.

이들 시설을 동시에 파괴하기 위해 미군 핵심 전략자산이 총동원된다. B-2 스텔스 폭격기와 F-22 스텔스 전투기, 오하이오급 순항미사일 탑재 핵추진 잠수함과 7함대 소속 구축함 등이 참가해 정밀유도폭탄과 순항미사일 600기를 동시에 발사한다. B-2 폭격기와 F-22 전투기는 북한의 강력한 방공망을 뚫고 직접 타격이 가능하다. 이 정도의 공습을 받으면 북한의 핵개발 인프라는 백지상태로 돌아갈 확률이 높다.

F-22 전투기
스트랫포 보고서는 워싱턴 정가에서 대북 강경 기류가 강해지는 시점에 발간됐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북한은 보고서 발간 직후인 6월15일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 “우리에 대한 미국의 불의적인 선제공격과 무력침공이 본격 검토, 준비되고 있다는 뚜렷한 증거”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문제는 미군이 대북 선제타격을 감행한 이후다. 북한은 미군이 군사행동에 나서면 휴전선 일대에 배치한 장사정포와 특수부대를 동원해 한국에 대한 보복공격에 나설 것이다. 미국과 일본 등에는 사이버 공격을 통해 인터넷 통신망 마비를 꾀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북한이 보복에 나설 경우 인구밀집지역인 서울과 경기 북부 지역은 장사정포 공격으로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 이 때문에 미군의 선제타격 시나리오는 한반도에서 대규모 전쟁이 발생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북한의 군사력을 일거에 무력화할 준비를 갖춰야만 한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사실상 전면전 상황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얘기다.

8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주한미군 오산공군기지에서 진행된 한·미·영 공군 연합훈련 ‘무적의 방패’에 참가한 우리 공군 F-15K, KF-16 전투기와 미 공군 F-16, 영국 공군 타이푼 전투기가 저공비행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
◆국내 상황과 전문가들 판단은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으로 정국이 어수선한 가운데 군 안팎에서는 미국의 대북 선제타격론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북한 핵실험 이후 과거에 보기 힘들었던 한·미 특수부대의 적 지도부 참수작전, 한·미 해병대의 상륙작전 뒤 적 핵심도시 전개 및 점령 작전, 한·미 해병대의 북한 피난민 수용 훈련 등이 실시된 데다 최근 한·미·영 3국의 첫 공군 연합훈련과 특수부대가 헬기로 북한 내륙에 침투하는 훈련까지 진행되면서 위기감은 고조되고 있다. 4월 전쟁설도 등장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비서관 출신 최경환 의원(국민의당)이 지난달 4일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예비역 장성의 말을 인용해 처음 제기했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대북 선제타격 가능성이 낮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북한 핵·미사일 능력 제거도 중요하지만 시리아·이라크에서 이슬람국가(IS) 소탕작전을 수행해야 하는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는 매우 힘든 선택일 수 있다는 것이다. 최동주 숙명여대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에서의 대북 선제타격은 북한 핵·미사일이 미국 본토를 공격할 능력을 확보할 때까지 ‘전략적 인내’를 지속해 얻을 수 있는 이익과 협상을 통한 해결책의 장점, 공습을 감행해 얻을 이익, 공습 직후 북한의 보복으로 미국과 아시아 동맹국들이 볼 피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뒤 실행 여부가 판가름날 것”이라고 말했다.

박병진 군사전문기자,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