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6-11-16 22:00:56
기사수정 2016-11-16 22:00:56
경제 외상보다 내상이 문제… 역사에 교훈 남겨야
“우리는 그래도 최순실 전공분야가 아니어서 소나기는 좀 피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사정당국의 고위인사가 사석에서 최순실의 전공인 탓에 쑥대밭이 된 문화체육관광부에 빗대며 한 웃픈 말이다. 산전수전 다 겪었다는 그도 자고 나면 쏟아지는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에 “신문 보기가 무섭다”며 당혹해한다. “이번 사태가 언제까지 갈 것 같으냐”고 연방 묻기도 했다. ‘멘붕’에 빠진 관료가 어디 그이뿐일까. 최순실 사태의 불길은 문화·체육·교육분야를 초토화한 데 이어 정치와 경제, 외교, 국방 등 전방위로 번지고 있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가히 공직사회 전체가 ‘최순실 공포’에 떨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성싶다.
과연 최순실 사태는 대한민국에 어떤 상처를 남겼을까. 정의당은 그동안 최순실 개입 의혹이 제기된 분야를 지목하면서 이번 파문으로 국민경제 피해액이 약 35조원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물론 신뢰도는 높지 않다. 이 숫자에는 아직 검증할 수 없는 개성공단 관련 기업피해액 15조8000억원과 무기사업 피해액 15조원, 대우조선해양 관련 2조8000억원이 포함돼 있다. 설혹 백번을 양보해 이 모든 의혹이 사실로 판명나고 그 피해액이 한푼도 남김 없이 허공 속으로 사라진다 해도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규모 1559조원의 2.3%에 불과하다. 경제외상만 따지면 결코 국가위기를 거론할 수준은 아니다.
문제는 최순실 사태가 몰고 올 ‘내상’이다. 비선권력이 국정을 농단하고 사술이 득세하는 현상은 망국의 징후임에 틀림없다. 국가를 떠받치는 사회정의와 시장경제의 골간을 뒤흔들기 때문이다. 어쩌면 경제외상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지 모른다. 최순실 일가는 대담하게도 부처인사와 국가사업을 좌지우지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국·과장뿐 아니라 장관과 차관인사까지 쥐락펴락했다. 기획재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에서 확인한 최순실 관련 예산만 3569억7600만원에 이른다. 국가경제의 인적, 물적 자원배분이 왜곡될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되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최씨 일가의 탐욕은 공공과 민간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그들은 권력을 등에 업고 삼성 등 재벌에게서 ‘삥’을 뜯었다. 최씨는 미르·K스포츠 재단을 만들어 53개 대기업으로부터 774억원을 강제로 모금했다. 모금시기를 전후해 박근혜 대통령은 재벌총수를 독대해 모금을 독려한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다. 와중에 청와대 경제 고위관료들은 ‘박 대통령의 뜻’이라며 민간기업의 경영권과 인사에 압력을 가하는 행각까지 벌였다. 해묵은 정경유착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걸 잘 아는 기업이 아무 대가 없이 비선실세에게 돈을 건넸을 리 만무하다. 언제나 그랬듯이 권력은 기업들에게 생사를 가름할 수도, 막대한 특혜를 안겨줄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이란 걸 이들이 모를 리 없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국정운영이 정상일 리 없고 시장경제와 기업가정신도 망가질 수밖에 없다.
아직까지 어느 누구도 최순실 국정농단 탓에 국가경제가 얼마나 멍 들었는지, 시장경제가 얼마나 훼손됐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박근혜 집권 시절 공공과 민간분야 전반에 드리운 최씨 일가의 어두운 그림자를 도려내지 않고서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기약하기 힘들다. 검찰수사에서 최순실 국정농단의 실체적 진실을 한점 의혹 없이 낱낱이 캐내 공개해야 하는 까닭이다.
다시는 이땅에 최순실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후대에 역사적 교훈을 남겨야 하는 게 우리 세대의 의무이자 소명일 것이다.
주춘렬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