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우리] 트럼프 시대 ‘우리의 패’ 이해시켜야

어떤 답을 줄지 기다려선 안 돼… 달라진 게임방식 능동적 대처 / 미국에만 의존하는 관행 벗고, 생존 걸린 문제 스스로 풀어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 직후 가진 첫 연설에서 군 예비역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표시했다. 참전 군인들이 보여준 애국심에 호소하며 미 국민의 단결과 통합을 시도하기 위함이다. 이런 가운데 많은 미국 내 유권자들은 아직도 트럼프를 심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고 우리 군 지휘부나 안보전문가 역시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다. 변화를 요구하는 미국의 민심은 전략적 사고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동안 미 합참과 군 지휘부는 오바마 행정부의 시리아 개입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고자 노력했다. 특히 시리아의 반군을 돕거나 이라크 이슬람국가(IS) 지역 탈환에 필요한 특수전 부대를 추가 파병하고, 전쟁의 조기 종결을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 이후 이러한 전략이 계속 유지될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 합참이 선호하는 동유럽 및 북유럽에 대한 미 지상군 역할의 강화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만 중국에 대한 경계심은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미 안보상황에 정통한 인사들은 트럼프 대통령 하에서도 남중국해 선상에서의 미·중 대결은 여전히 줄어들기 어렵다고 한다. 이는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동북아 정세의 구조적 특징 때문이다.

홍규덕 숙명여대 교수·국제정치학
잘 알듯 중국과의 대결국면은 반드시 북한 문제와 연결되게 돼 있다. 미·중 관계가 현재와 같은 불편한 상태를 조기에 극복하지 못한다면 사드 논쟁에서 보듯 우리의 입지는 매우 제한될 수밖에 없다. 북한은 결코 핵 개발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중국은 북한에 대한 제재의 구멍을 메우는 데 소극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트럼프 당선자가 유세기간 내내 한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지원에 대해 부정적으로 언급한 것은 미국의 외교안보 정책의 변환과정에서 더 이상 성역을 두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혹자는 당선자 트럼프가 유세 기간과는 달리 현실에 기반한 예측 가능한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희망적 사고에 기인한 안일한 대책으로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누가 국무장관이 되고, 국방장관이 되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우리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를 준비하는 것이 더욱 더 중요하다. 동맹국의 기여 확대와 미국의 개입 축소를 바탕으로 한 미국의 ‘신고립주의’는 되돌리기 어렵다. 미국은 가능한 한 개입의 피로와 부담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한다.

문제는 그 공백을 누가 메우느냐이다. 이에 공백을 메우기 위한 노력을 우리 스스로 자임하되 부족한 부분을 미국 측에 도와달라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가 종전보다 더 많은 역할을 담당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줘야 하며, 다만 그러한 역할에 필요한 조건과 지원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행여나 걱정만으로 세월을 보내거나 미국이 답을 정할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 된다. 누가 새로운 진용에 포함되든 간에 우리의 달라진 자세와 의지가 중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문제의식을 비판하기에 앞서 그와 그를 선택한 지지자들의 우려를 존중하고, 협조하되 만약 미국 측이 사태를 안이하게 판단하거나 잘못 이해할 경우, 왜 그러한 생각이 위험한지 명확히 지적하고 무엇이 문제인지 논리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트럼프 당선자는 평생을 거래하며 부를 일군 사업가이자 승부사이다. 전작권 전환부터 방위비 분담과 북핵 문제까지 다양한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의 패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리고 이해시켜야 한다. 게임의 방식을 바꾸겠다는 그에게 문제를 풀어가는 주도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북핵 문제 해결에서 트럼프의 등장은 미국에 의존하는 과거의 관행에서 벗어날 기회가 될 수 있다. 공동의 이익을 키우고 새로운 위협에 대처하면서 이익을 넘어서는 가치를 인정하는 것은 비즈니스의 정석일 뿐 아니라 동맹 딜레마를 해소하는 해법이 될 수 있다.

홍규덕 숙명여대 교수·국제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