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밝힌 100만 촛불, 연행자는 '0'… 시민은 성숙했다

핫팩 사서 시위대에 나눠준 학생 /“남들도 나처럼 추울 것 같아서”/ 시위대, 경찰차 이물질 제거도 / 평화적·이타적 광장문화로 승화 / 박사모 등 보수단체 맞불 집회 / 시위대에 돈 주는 장면 포착도
광화문에선… 촛불 vs 맞불 19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4차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엄마부대 등 보수단체들이 서울역광장에서 ‘우리 대통령은 우리가 지킨다’ 집회를 개최하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하상윤 기자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19일 열린 4차 주말 촛불집회에서 국민은 다시 한 번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줬다. 서울과 전국 70여곳에서 동시다발로 열려 주최 측 추산 95만명(경찰 추산 26만명)의 인파가 운집했지만 경찰 연행자가 ‘0’을 기록할 만큼 평화롭게 마무리됐다.

20일 시민사회단체 1500여개가 연대한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에 따르면 전날 ‘박근혜 퇴진 4차 범국민행동’에는 서울 60만명, 지역 35만명이 모였다. 지난 주말 역대 최다 인원이 모인 3차 집회에 이어 다음 주말(26일) ‘서울 집중집회’를 앞두고서 쉬어 가는 집회가 될 것으로 전망했으나 박 대통령의 수사 회피 등에 성난 민심은 되레 전국으로 번진 형국이 됐다.


성숙한 평화집회 기조는 회를 거듭할수록 안착하는 모습이다. 직설적인 분노 표출보다는 비폭력 평화집회가 상대를 더욱 압박한다는 사실을 많은 이들이 깨닫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차 집회 때 일부 시위대가 경찰 차단벽을 오르는 등 과격행동을 하고 해산을 거부하는 등 불법 행위를 저지른 끝에 경찰에 청와대 방면 행진의 제동 근거로 사용된 점을 고려한 듯 한층 ‘평화롭고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내자동사거리 등 대치 지점에서는 경찰과 시민이 서로 “비폭력”과 “평화시위”를 외쳤고, 결국 경찰 연행자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지난 집회 땐 불법 밤샘 농성을 벌이던 이들이 경찰에 맞서다 23명이 연행됐다.

이날 광화문광장 곳곳에서는 시위용품을 자체적으로 구입하거나 제작해 시민들에게 무료로 나눠 주는 자원봉사자들이 눈에 띄었다. 세종문화회관 뒤편에서 시민들에게 핫팩을 무료로 나눠주던 대학생 조창근(22)씨는 “지난주 집회 때 날씨가 추워서 오늘은 시민들께서 따뜻하게 참여하시라고 친구 3명이 10만원씩 모아 핫팩을 사서 나왔다”고 말했다.


정부서울청사 인근에서는 집회를 마친 시민들이 경찰 버스에 붙은 스티커를 손으로 직접 떼는 진풍경을 보여주기도 했다. 앞서 한 크라우딩펀딩 단체에서 차벽에 평화를 상징하는 꽃무늬 스티커를 붙이는 퍼포먼스의 일환으로 무료로 나눠 준 스티커였다. 스티커를 떼고 있던 대학생 김모(21·여)씨는 “당초 이 퍼포먼스의 의도는 알겠지만 내일 스티커를 떼는 사람들은 결국 의경들일 텐데, 그들의 고생을 덜어주려 한다”며 “주변에 나와 같은 생각으로 스티커를 떼는 분들이 이렇게 많아 힘든지도 모르겠다”고 웃어보였다. 집회가 끝나고 교통정리를 하는 한 의경에게는 길을 지나던 아주머니가 “고생했다”며 주머니에 귤을 넣어줘 주변에서 박수를 쳤다.

이날도 최순실 게이트를 풍자한 각종 패러디가 시민들의 관심을 끌었다. 한 참가자는 흰색 블라우스를 입고 머리 위에 선글라스를 얹은 채 최씨를 연상시키는 ‘코스프레’와 표정으로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무대 위에 올라 ‘하야체조’를 선보여 시민들의 박수를 받았다.

한편, 보수단체들도 이날 서울역 앞에서 ‘맞불집회’를 개최했다.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를 비롯해 한국자유총연맹, ‘근혜사랑’, 나라사랑어머니연합 회원 등 80여개 보수단체에서 주최 측 추산 7만명, 경찰 추산 1 만1000명이 모여 “하야반대”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날 집회에서는 연단에 오른 김경재 한국자유총연맹 회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삼성에서 8000억원을 걷었다”고 발언해 논란이 되고 있다. 집회 주변에서 시위 참가자들에게 돈을 나눠 주는 장면이 한 1인 독립언론에 포착되기도 했다.

서필웅·김선영 기자 007@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