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6-11-22 01:07:48
기사수정 2016-11-22 01:07:48
대통령 하야보다는 탄핵이 더 발전된 민주주의적 선택 / 국민적 반성의 기회로 삼아 합리적 사회 건설이 급선무
최순실 게이트는 박근혜 대통령을 정치적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 검찰특별수사본부는 20일 그동안의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대통령의 공모혐의(청와대 대변인과 대통령 변호인은 이를 전면 부인했다)는 있지만 직접 조사를 하지 않았고, 대통령의 면책소추권 때문에 기소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런 시기에 매우 중요한 것은 대통령 혐의가 상당수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예정된 특검과 국회국정조사, 국회의 탄핵의결과 헌법재판소의 최종결정을 남겨두고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의 불행은 대통령 개인의 불행일 뿐 아니라 국민의 불행이다. 이런 국민적 불행을 헌법에 기초해서 침착하게 극복할 때 한국의 민주주의가 한 단계 성숙할 것이라는 점은 명약관화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의결(재적의원 271명 중 193명이 찬성)되었지만 헌법재판소에서 “법률 위반은 일부 인정되지만 대통령을 그만두게 할 만큼 중대한 사유라고 할 수 없다”고 하여 기각하였다.
대통령의 탄핵은 그만큼 국가적 위기와 혼란을 불러오고 국민적 상처가 되기 때문에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사항이다. 국회에서 탄핵이 의결되고 대통령권한대행 체제가 이루어졌지만 결국 탄핵은 불인정되었다. 이런 사례를 볼 때 우리 국민은 좀 더 신중하게 지켜 볼 필요가 있다. 일부 언론은 지금까지 촛불집회와 야권의 대통령 하야에 동조하는 보도와 논조를 유지한 게 사실이다. 언론들은 최순실 사건만 세상에 있는 것처럼 편집광을 보인 것도 사실이다.
선진민주주의는 국가적 중대사태가 발생했을 때 처음엔 흥분하고 극단적인 행태를 취하는 수가 있더라도 서서히 평정심을 되찾고, 심리적 거리유지를 하면서 결국 법의 심판을 기다리는 ‘인내의 시간’을 맞아야 한다. 이는 국가적 위기를 기회로 넘기는 지혜이기도 하다. 앞으로 헌법재판소가 또다시 ‘대통령을 그만두게 할 중대한 사유’는 아니라고 결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언론의 선정주의와 일부 정치적 세력의 선동주의는 위기를 기회로 승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혼란과 후퇴로 넘어가게 하기 십상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포퓰리즘에 압도될 수도 있다. 과도한 유추와 여론유도, 그리고 역사적 은유(단두대와 상여)는 자제되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완전히 최순실의 하수인 혹은 최순실과 똑같은 인물로 환원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뽑은 대통령이 자신의 잘못으로 혹은 측근의 배반으로 부정부패에 연루될 수는 있겠지만, 박근혜의 전반적인 통치행위가 최순실의 부정부패와 동일시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대통령의 ‘하야(下野)’가 민주주의의 전진인지, 후퇴인지 자신 있게 말할 사람은 누구인가. ‘하야’보다는 최악의 ‘탄핵’이 훨씬 더 발전된 민주주의의 모습이다.
이번 최순실사태는 국민적 반성의 기회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의 분노와 저주 속에 위선과 노예근성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머니(money)신(神)’ ‘많이 많이 신’과 분야마다 조폭들만 득실거린다. 폭력사회였기에 최순실은 통하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런 점에서 ‘평균적 최순실 사회’인지도 모른다. ‘합리적인 사회’의 건설이 급선무이다. ‘내가 하면 사랑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다’는 이중적 잣대를 넘어서야 한다.
한국을 생각할 때 항상 ‘사대주의-식민주의-마르크스주의’라는 역사적 이데올로기 과정을 극복한, ‘주인 된 한국’의 모습을 보고 싶은 게 염원이다. 일제식민지를 거친 한민족으로 볼 때는 마르크스주의가 제격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신은 유엔을 통해 남한(38도선 아래)에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선물했다.
이것을 ‘선물’이라고 하는 것은 그 후 공산사회주의(전체주의)의 몰락과 대한민국의 경제적 성공을 다른 말로 그 ‘과분함’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선물이 과분했다고 해서 지금에 와서 그 선물을 버리는 바보가 될 필요는 없다. 현재 남한의 좌파와 종북좌파들은 기회만 있으면 그 선물을 온갖 비방과 선전모략으로 붕괴시키려 하고 있다.
최순실 사태로 더더욱 실망스러운 것은 차기 대선주자들의 발언과 면면들이다. 하나같이 나라를 걱정하는 눈빛보다는 어떻게 하면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을까 계산에 바쁘다. 제각각 당파적 사고를 드러내면서 ‘하야’를 주장했다. 이것이 법치로 민주주의를 이끌어갈 율사출신 대선주자들의 발언이라고 믿을 수 없었다.
역대 대통령들은 하나같이 주변인물과 세력들의 부정부패를 피해갈 수 없었다. 모두 아들 혹은 친·인척의 비리에 시달렸지만 박 대통령만 친·인척이 아닌 점이 다르다. 여야 합의로 최순실 사건 특별검사법안과 여야 국정조사가 합의되었으니 박 대통령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위해서 멘털붕괴의 국민은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뒤 한반도 주변 4강들의 움직임은 더욱더 불가측해지고, 백 년 전의 구한말과 비슷한 상황이다. 자칫 잘못하면 다시 식민지로 돌아가지 말라는 법도 없다. 아무리 대한민국이 엉망진창이라고 해도 ‘국민 없는 국가’(북한)보다 못할 것인가. 심기일전하고 용기를 내자.
박정진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