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림이 마음을 보는 통로 됐으면”

현대 구상회화 맥 잇는 영국 토니 베번 개인전 프랑스 철학자이자 시인 가스통 바슐라르는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것이 가장 고귀한 행위’라고 했다. 바슐라르의 시들은 잠들어 있던 감각들을 깨우고 주위에 널려진 아름다움에 대한 각성, 눈뜨기를 촉구하고 있다. 프랜시스 베이컨, 루시언 프로이드 등 영국 구상 회화의 맥을 잇고 있는 토니 베번(Tony Bevan·65)도 그의 영향을 받았다.

나는 바슐라르의 외침에 이끌렸다. “일어나라. 저 흔들리는 램프의 아름다움을 통한, 무궁한 상상력의 아름다움을 보라. 저 상상력이 주목하는 살아있는 자연을 보라. 눈을 떠라’는 그의 아우성이 나를 깨웠다.”

바슐라르의 ‘몽상의 시학’에 빠져든 작가는 모든 것을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가 지적한 대로 우리는 일상에서 더 이상 램프나 촛불을 통한 빛 밝히기를 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전기 스위치를 끄고 켜는 것을 작동할 뿐이다. 전등은 인류의 꿈을 가꾸는 몽상가들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고야의 ‘개’ 그림 구도를 연상시키는 작품 앞에 선 토니 베번. 그는 ”내 그림은 정신(마음)의 여정”이라며 “내 그림이 각자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통로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의 행로는 바슐라르의 ‘촛불의 미학’으로 이어진다. 타버려 사라지지만 주변을 빛으로 밝힌 존재로 남는 것이다. 인간 정신도 그렇게 모든 대상에 존재하는 것이다. 램프가 있는 곳은 추억도 함께하기 마련이다. 인간 정신도 그곳에 머물고 있다.

그의 구체적 작품 스토리는 바슐라르의 ‘시적 이미지 현상학’에 이끌리고 있다.

“나는 어떤 매체(시 그림 음악 건축 나무 등)를 경험하는 과정에 나타나는 느낌이나 의식의 흐름을 이미지로 묘사한다.”

핏줄 같은 선으로 이어진 그의 인물화 등이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집, 실내, 구석, 장롱, 서랍 등 다양한 공간에서 ‘내밀함’을 발견하는데, 이는 ‘요나 콤플렉스’와 연결된다.

요나 콤플렉스는 엄마의 자궁 속에 있을 때 형성된 이미지로 어떤 공간에 평안하게 감싸인 느낌을 말한다.

“인간의 정신도 육체라는 공간 속의 내밀함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인간의 육체와 정신을 건축에 비유했다. 공간적 내밀함이 정신이라는 얘기다. 사실 건축은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의 경험과 기억으로부터 인식되게 마련이다.

내가 존재하는 우주와 그 속의 존재들은 모두 나의 내밀한 공간이다. 나와 핏줄처럼 연결된 것이다. 그의 나무 그림이나 인물, 건축 구조물 그림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 흔한 조수도 쓰지 않고 런던 작업실에서 매일 10시간에서 12시간 붓질을 하는 그는 캔버스를 바닥에 눕혀 놓고 온 몸을 사용해 그림을 그린다. 몸의 에너지가 그대로 전달될 수 있게 붓끝을 잘라 사용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그린 자화상만 무려 100점에 달한다.

“단순한 얼굴이 아닌 정신의 내밀한 공간을 그렸다고 할 수 있다. 내 얼굴이니 자유롭고 제한 없이 그릴 수 있으니 좋다.”

그는 얼굴 너머의 내밀한 공간,세상과 연결된 ‘저 너머’의 세계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정신으로 연결된 애니미즘을 떠올려 보게 된다.

토니 베번은 영국왕립미술원 회원으로 현대 구상회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가다. 최근에 런던 프리즈 아트페어 거장전에 개인 부스를 여는 등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지난해 모딜리아니의 ‘누워 있는 나부’를 무려 1980억원에 사들여 화제가 된 중국 상하이 갑부 류이첸 선라인그룹 회장이 그의 작품 9점을 사들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12월 24일까지는 리안갤러리 서울에서 열리는 전시에서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