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현장] 사라지는 해조류… '죽음의 바다'가 늘어간다

생태계 위협하는 '바다 사막화' / 어류 서식·산란지 줄어 수산자원 황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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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황폐화되고 있다. 물고기와 조개 등 각종 무척추동물이 서식·번식하는 해초밭이 사라지고 있기때문이다. 연안에 ‘바다 사막화’로 불리는 갯녹음(백화) 현상이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갯녹음 현상은 바다 밑 암반에 미역과 같은 해조류 대신 석회조류가 뿌리를 내려 바다 생명체의 생태계를 위협하는 것을 말한다. 그나마 암반을 검푸른색 이끼처럼 덮은 석회조류마저 죽으면 그 위에는 생명체가 없는 흰 바위가 되고 만다. 결국 바닷속에 사막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바다 사막화는 동·서·남해안을 가리지 않고 확산되고 있다.


최근 전남 여수시 인근 연안을 찾은 한국해양구조협회 잠수사들은 바다 사막화의 현실을 고스란히 확인했다. 29일 잠수사들은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당연했던 녹색 바다는 사라진 상태였다”며 “수심 10m 아래 바닷속에는 식용이 불가능한 불가사리 등만 난무했다”고 밝혔다. 해조류의 서식지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바다의 해조류는 육지의 산림처럼 해양 생태계의 필수 요소이다.


◆해수온도 상승… 갯녹음 지역 확대

바다 사막화는 해조류의 서식지를 파괴해 전복이나 소라 등 해양 생물이 먹이를 충분히 공급받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어류의 서식지와 산란지가 줄어들게 돼 궁극적으로 수산자원이 고갈된다. 갯녹음은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환경변화에 따라 해조류를 먹는 성게 등 조식동물이 늘어난 게 주요 원인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수온 상승과 연안 오염, 해조류 남획 등도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보는 것이다.

국내에서 갯녹음이 처음 발견된 때는 1992년이다. 당시 제주 해역에서 발견돼 환경단체의 우려를 샀다. 갯녹음 현상은 이후 점차 범위를 넓혀 경북 인근 동해안에 이어 최근 전남 연안의 서해안과 남해안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국내 갯녹음 면적은 2004년 7000㏊에서 2014년 1만9000㏊로 연간 27.1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지역별로 보면 동해안에서 갯녹음 현상이 확인된 암반은 105.18㎢에 달한다. 이는 동해안 전체 암반 170.54㎢의 61.7에 해당된다.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이 최근 전남 진도에서 부산까지 남해안 일대에 대한 조사에서도 갯녹음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전남 지역의 경우 해남과 여수 등 남해안에서만 683h㏊에 달한다. 이 중 백화가 진행돼 바윗덩어리만 남은 곳도 260㏊에 이른다. 갯녹음으로 어류와 해조류 등 바다 자원이 고갈되면서 어민들의 어획량도 줄어들고 있다.

미역 채취가 줄고 어류와 전복 등의 생산도 크게 감소하고 있다. 지난해 말 여수 등 남해안에서 어획한 개조개는 145t으로 전년에 비해 9.4 줄었다.

전남 여수시 남면 안도마을 김명곤(60) 어촌계장은 “갯녹음 현상으로 어획량이 10년 전에 비해 60∼70정도가 줄었다”며 “1995년 7월 유조선 시프린스호 기름 유출사건이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했으며, 이후 낚시꾼들이 밑밥(방부제) 등을 무작위로 뿌려 생태계 파괴가 가속화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피해 면적 파악도 안 돼… 바다숲 조성이 해법

갯녹음이 확산되고 있지만 뚜렷한 대책이 마련돼 있는 것은 아니다. 갯녹음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기후변화와 환경 오염을 막기 힘들기 때문이다.

현상 파악도 원활하지 않다.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이 정기적으로 갯녹음 지역을 조사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또 갯녹음 피해를 줄이기 위한 ‘바다 숲 조성사업’을 펼치고 있지만 예산 등이 부족한 실정이다.

전남 지역만 하더라도 갯녹음 피해 조사는 2009년 남해안 일대를 중심으로 한 차례만 이뤄진 실정이다. 해역별로 갯녹음 지역을 조사하지도 못하고, 원인을 규명할 정밀 조사에도 나서지 못한 것이다.

예산이 확보되지 않아 당장 갯녹음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어민들의 상황조차 파악 못하고 있다는 게 관계 당국의 설명이다. 전남도는 올해 초부터 해수부가 추진하고 있는 ‘바다 숲 조성’ 사업에 24억원을 지원받았다.

이 사업비는 여수시와 완도군에 각각 8억원, 16억원이 책정됐다. 이 같은 사업비는 ‘바다 숲 조성’ 사업 전체 예산액 347억원의 6.9에 불과하다.

강원도(4개소·771㏊), 경북도(8개소·713여㏊), 제주도(4개소·1035여㏊) 등이 면적당 지원받은 액수와 비교해서도 터무니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전남도는 자체적으로 올해부터 2020년까지 총 6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해중림 기반조성사업’으로 갯녹음 피해를 줄여 나가고 있다. 올해 12억원 등 연차적으로 3개 해역 7∼8개소에 예산을 투입한다. 바다 수생식물 숲 조성사업도 함께 추진해 수자원 확보에 나설 방침이다. 

이런 대책도 어민들의 기대 수준엔 미치지 못한다. 전문가들은 갯녹음 발생 면적을 줄이기 위해 민간 부문의 참여가 절실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바다 사막화 방지를 위한 대책으로 발전소 온배수 배출 개선을 비롯해 산업단지 등 오염물질 방류 차단, 대형 선박의 평형수 방류 제한,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지역 복원, 인공어초의 재질과 성분 분석 투입, 가두리 양식장의 3년 주기 이동과 청소, 바다 쓰레기 처리 등이 제시되고 있다.

김영현 광양만환경포럼 대표는 “현재 정부에서는 바다 사막화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막대한 예산 문제 등으로 사실상 눈을 감고 있는 상황”이라며 “발전소 온배수의 온도를 낮춰 배출하는 냉각탑을 설치하는 등 정부의 적극적인 대처와 함께 민간 분야에서도 심각성을 느끼고 바다 사막화 방지 사업에 참여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무안=한승하 기자 hsh62@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