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온나라가 어지러운 가운데 사법부 수장인 양승태(사진) 대법원장이 전국 법관들에게 “육중한 바위 같이 폭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진중한 자세로 묵묵히 헌법적 사명을 다 해나가자”고 당부했다.
양 대법원장은 2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 인사말을 통해 “유난히 다사다난했던 2016년의 한 해가 마지막까지 크나 큰 정치적 격랑에 휩싸인 채 저물어간다”며 “법원장회의를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은 이로 인해 말할 수 없이 무거움을 느낀다”는 탄식으로 운을 뗐다.
이어 “그러나 사법부는 정치 상황에 초연해야 한다”며 “이럴 때일수록 공직을 맡고 있는 우리는 의연한 자세와 빈틈없는 직무 수행으로 국민에게 믿음과 안도감을 주어야 할 헌법적 책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행여 법관들이 대통령 탄핵과 퇴임을 요구하는 사회 분위기에 휩쓸려 정치적 언행을 할 경우 법원의 중립성이 의심을 받고 사법부에 대한 국민 신뢰가 떨어질 것임을 경고한 것이다.
그는 “나라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고 국민들이 불안한 마음으로 국정을 바라보고 있다”면서 “국가 기능의 한 축을 맡은 사법부의 사명이 더욱 중요해진 만큼 평상심을 잃지 않고 원칙과 정도에 따라 맡은 직분을 충실히 수행하여 이 땅에 법의 지배가 굳건히 뿌리 내리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6년은 사법부에 커다란 시련이 불어닥친 해였다.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가 단 2건의 형사사건을 수임하는 대가로 100억원이란 천문학적 금액의 수임료를 챙겼다가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인천지법 김수천 부장판사는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로부터 억대 뇌물을 받아 챙긴 혐의가 드러나 현직 법관 신분으로 역시 검찰에 구속됐다.
양 대법원장은 “이러한 일련의 사태는 모든 사법부 구성원을 형언할 수 없는 충격과 치욕에 빠뜨리고 그 동안 신뢰 확보를 위해 공들여 온 노력이 일시에 무너지는 듯 한 좌절감을 느끼게 했다”며 “향후 이같은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가능한 모든 조치를 다 할 것임을 다짐하고 행동으로 이를 보여야 할 책무가 있다”고 힘줘 말했다.
거액 수임료 탓에 다시 논란이 불붙은 전관예우와 관련해 양 대법원장은 “우리는 재판에 있어 전관예우의 관행이 있음을 단호히 부정한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전관 관계를 악용하거나 오해할 수 있는 소지가 법원 내부에 있음을 알면서도 이를 방치했다면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외부에만 돌릴 수는 없을 것”이라며 “국민이 사법부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하고, 부정적 인식이 있다면 원인을 규명해 극복하려는 결연한 의지를 가질 때 비로소 신뢰 확보를 향한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