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6-12-04 21:10:16
기사수정 2016-12-04 22:53:45
부산의 파워 컨벤션업체 리컨벤션 이봉순 대표
“그날 미국 시카고로부터 날아온 급보에 국내외 컨벤션 업계가 경악했어요. 지구촌 최대 메가이벤트 총괄기획자(PCO·컨벤션업체)로 우리가 뽑힌 거죠.”
4일 부산 해운대구 센텀시티 내 KNN타워 14층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만난 이봉순(54·여) ㈜리컨벤션 대표는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는 표정으로 그날의 감격을 되새겼다.
“남들은 (여성 CEO가 이끄는 작은 신생 컨벤션업체가 수주한 데 대해)기적이라고 말하지만, 저는 결코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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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순 ㈜리컨벤션 대표가 4일 부산 해운대구 센텀시티 KNN타워 내 사무실에서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
시카고에서 결정된 메가이벤트는 2012년 부산에서 열린 민간 컨벤션행사 중 역대 최대 규모인 ‘2012 라이온스 부산세계대회’를 말한다. 당시 208개국에서 5만5000여명이 참가해 부산 및 경남지역 일대의 숙박업소 객실을 싹쓸이한 행사다.
이 행사 개최 1년여 전인 2011년 1월 국제라이온스본부는 미국 시카고에서 회의를 열어 쟁쟁한 국내외 굴지의 PCO를 제쳐 두고 리컨벤션을 택한 것이었다. 당시 리컨벤션은 특유의 치밀하면서도 독창적인 기획력으로 승리했다. 이 대표는 “국제라이온스본부는 우리의 높은 창의성과 행사진행의 구체적인 대안 제시, 해외행사 실적을 높이 샀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들은 5만5000명에 대한 부족한 숙박공간을 외국 크루즈로 대체하겠다는 발상에 대해 매우 만족감을 표시했는데, 사실 저는 이 아이템 때문에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당시 숙박시설뿐만 아니라 평소 교통체증이 심한 해운대에서의 시가지 퍼레이드 등은 국내에서 한 번도 치러본 적이 없는 역대 최대 규모 행사였던 것만큼 입찰에 응한 모든 기획사들의 한결같은 고민이었다. 이 대표는 이 난제들을 창의적이고 실현가능한 근거들을 중심으로 해결책을 제시했다. 리컨벤션은 이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내 일약 세계적인 PCO 반열에 올라섰다. 이듬해인 2013년에는 ‘한국 마이스대상’을 수상했다.
여성인 이 대표가 변방 부산에서 업종도 생소한 PCO 업체를 창업한 것은 15년 전인 2001년이다. 그는 1992년부터 항만터미널 업체에 근무하면서 유럽과 아시아 등에서 열리는 컨벤션행사를 자주 접했다.
“그때마다 어쩌면 행사 기획업무가 천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 일을 하지 않고는 도저히 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과감하게 창업했다”고 창업동기를 설명했다.
사무실이라야 겨우 15평, 손바닥만 한 공간이었다. 직원도 3명에 불과했다. 더욱이 부산의 컨벤션업체는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명함조차 내밀지 못하던 때였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대부분의 컨벤션 입찰이 서울에서 이뤄지던 때 서울 업체들과 경쟁하기는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다름아니었다. ‘지방업체’는 언제나 따라다니는 꼬리표였고, 브랜드 가치는 ‘제로’였다.
출범 몇개월 만에 새로운 시장을 적극적으로 찾기 위해 세계음식문화박람회를 맡아 기획했으나 경험 부족으로 수익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적자가 너무 심해 갖고 있던 집 2채를 모두 팔아 겨우 충당했다. 그 여파로 수개월을 가족과 함께 사무실 한쪽에 설치한 주거공간에서 지내야 했다. 이 대표는 “당시에는 정말 죽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며 씁쓰레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특유의 낙천성으로 이를 극복했다. 그 희망의 씨앗은 역발상이었다. 그는 알아주지도 않는 국내에만 의존하지 말고 해외로 뛰어보자고 결심했다. 아이디어와 기획력만 판단하는 해외에서라면 자신있었다.
창업 전 항만마케팅을 담당한 9년간의 노하우도 갖고 있었다. 그의 예측은 적중했고, 그후 수년 동안 해외에서 빛나는 실적을 올렸다. 그때부터 해양항만 분야는 그의 특화상품이 됐고, 그 실적을 바탕으로 국내시장에 다시 도전했다. 사업은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창사 당시 15평에 불과하던 사무공간은 현재 40배인 600여평으로 늘었고, 직원도 3명에서 36명으로 12배나 불어났다. ‘지역을 넘어 세계로’란 구호 아래 꿋꿋하게 세계시장을 개척한 게 빛을 발한 것이다.
이 대표는 지난여름 미국 출장길에 꿈에 그리던 구글 본사를 방문했다. 자연 속에 들어선 자유로운 공간에서 새 역사를 창출하는 것에 깊은 영감을 받고 돌아왔다고 한다.
그는 “‘부산을 넘어 세계로’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미래 먹을거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플랫폼 개발에 주력하겠다”고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이 대표의 성을 딴 리컨벤션이 PCO 업계의 구글이 되는 날은 언제쯤일까….
부산=글·사진 전상후 기자 sanghu6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