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친박이 죽어야 보수가 산다

최순실 국정농단 방조한 친박
퇴진 안 하면 보수 희망 없어
압도적 탄핵이면 폐족 만들어
청산 못 하면 보수신당 필요
천재적 신경정신 의학자 사뮈엘 핀처. 슈퍼컴퓨터와의 체스 대국에서 이긴 날 약혼녀와 사랑을 나누다 갑자기 죽는다. 절정의 순간 ‘최후 비밀’이 작용해서다. 뇌의 특정 부위를 전기로 자극하는 것. 최후 비밀은 인간에게 최고의 쾌락을 안겨준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소설 ‘뇌’에 나오는 얘기다. 소설은 핀처 사인과 함께 인간 행동의 ‘동기’를 찾는다. 고통·성애·습관성 물질 등등. 최후 비밀은 어떤 것보다 강하다. 전·현직 기자인 남녀 주인공은 최후 비밀을 알아내지만 묻어버린다. 인류의 종말이 두려워서다. 실험쥐 프로이트는 전기자극을 계속 가하다 죽었다. 소설에서 다루지 않은 권력이라는 동기도 최후 비밀 못지않게 중독적이다.

최순실 게이트는 권력의 민낯을 보여줬다. ‘군주 코스프레’가 화근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유아독존이다. 주변의 ‘섬김’을 당연시한다. 원조 친박계 출신이 일화를 전했다. “대선후보 경선 때 팀을 꾸려 도왔다. 인원이 많아 수억원을 썼다. 대통령도 알았는데, 고맙다는 말조차 않더라. 제 밑에 있는 게 보상이라는 인식이다.”


허범구 논설위원
최순실과 ‘문고리 3인방’은 예외였다. 왕의 분신이고 수족이라서다. 권력은 공유됐다. ‘부역자’ 김기춘·우병우 등은 곁불을 쬤다. 굽히면 챙기고 모나면 버린다. ‘박근혜 스타일’을 체화하며 호가호위한 게 친박이다. 국정농단을 방조한 의혹이 짙다.

박 대통령은 대가를 치르고 있다. 조기 사퇴와 퇴임 후 불행은 예약된 상태다. 친박도 연대책임을 지는 게 도리다. 과거 친노계는 그래도 부끄러움을 알았다. 2007년 대선 패배 후 “우리는 폐족”이라고 했다. 친박은 자기들 살겠다며 물불 안 가린다. 탄핵을 피하려고 주군에게 독배를 내밀었다. ‘임기 단축’은 단물만 빨아온 골수 친박(골박)의 작품이다. 꼼수가 안 먹히자 이젠 하나둘씩 ‘탄핵열차’에 올라타고 있다.

박 대통령은 중도 하야 없는 탄핵 장기전을 예고했다. 대통령은 “담담하게 가겠다”고 해도 탄핵은 집권세력에게 사형선고나 같다. 정권 재창출은 욕심이다. 야권 대선주자의 지지율 합은 50%가 넘는다. 여권 잠룡은 보잘것없다. 탄핵 후폭풍은 격차를 더 벌릴 것이다. 조기 대선이 치러지면 진보정권 탄생은 떼어놓은 당상이다.

보수는 “자폭하라”는 욕까지 먹고 있다. 박 대통령과 친박이 먹칠한 탓이다. 반성·책임·희생이라는 기본 가치를 망가뜨렸다. 보수 지지자 상당수가 떠나갔다. 분열의 주범도 친박이다.

위기는 기회다. 한탄만 하면 내일은 없다. 혁신을 추진하며 재건 토대를 쌓아야 한다. 초석은 가짜 보수 친박 수구세력을 몰아내는 것이다. 보수가 사는 외길이다.

9일 탄핵안 표결은 분수령이다. 통과만으론 친박 청산이 어려울 수 있다. 찬성이 240표쯤 압도적으로 나와야 한다. 새누리당 의원 절반 이상이 동참해야 가능하다. 그래야 비박계가 당내 주도권과 보수 정통성을 차지하며 다수파가 될 수 있다. 210표 안팎의 턱걸이 가결이면 문제다. 친박이 “‘샤이 박근혜’가 많다”며 버티게 된다. ‘12월21일’ 지도부 사퇴 약속도 뭉갤 수 있다. 탄핵표 확대는 비박의 중대 책무다. 서청원·최경환·윤상현·홍문종 의원 등 골박의 저항은 거셀 것이다. “밀리면 끝장”이라며 사생결단이다. 이혜훈 의원은 7일 비박계를 망신줄 수 있다는 사정기관의 협박 정황을 폭로했다. 골박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친박이 살면 새누리당도, 보수도 절망적이다. 비상대책위를 만든다 해도 친박 입김을 배제하기 힘들다. 비대위를 통해 당을 해체, 재창당하는 건 불가능하다. 친박이 대선에 적극 개입할 공산도 크다. 대선 지분은 영향력을 유지하는 자산이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대안으로 유승민 의원을 잡으려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새누리당에서 인적 청산이 안 된다면 분당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무소속 김용태 의원은 ‘9적’ ‘20적’을 거론하며 “그들을 출당시키지 못하면 당을 깨고 나와야 한다”고 했다. 야당을 하더라도 5년 후를 기약하는 희망의 싹을 키워야 한다. 새 보수세력, 보수신당은 절실하다. 유 의원과 남경필 경기지사 등 여권 주자들의 어깨가 무겁다.

허범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