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범구의 대선리포트] 용암이 끓는다… 이재명과 반기문

'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9일 표결된다. 압도적 통과는 국민적 요망이다. 부결되면 민란이 날 만큼 민심은 사납다.

탄핵정국은 대선구도를 흔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재명 성남시장이 가장 핫하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희소 가치’가 커졌다. 아웃사이더와 정치 초년병. 공히 중앙무대 검증이 안됐고 정당 지지기반이 거의 없다는 게 약점이다. 두 사람 운명은 ‘제3지대’와 정계개편, 개헌 등 중요 변수에 따라 출렁일 수 있다.

◆이재명, 문재인 잡으면 대권 먹는다(?)

‘듣보잡’에서 ‘다크호스’로. 몇달 전 야권 대선주자를 모두 초청해 개최한 한 행사. 이 시장도 얼굴을 내밀었다. 일개 기초단체장과 동석하는 걸 마뜩잖게 여긴 일부 참석자가 있었다는 후문이다. 당시 이 시장은 지지율도 미미했다. ‘1번 주자’를 자부하는 제1야당 거물 문재인 전 대표로선 심기가 편치 않았을 법하다. 이 시장은 지금 상종가를 치면서 ‘문재인 대항마’로 떠오르고 있다. 리얼미터가 8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이 시장은 지난주에 비해 1.9%포인트 오른 16.6%를 기록했다. 4주 연속 최고치를 경신했다. 문 전 대표는 23.5%로 6주째 1위를 달렸다. 격차는 있지만 좁혀지는 추세가 심상치 않다.

책사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 그는 이날 “이 시장이 대중에게 어필하는 건 오랜 고민을 토해내 진정성이 전달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기존 주자들이 겁내하던 ‘분노’를 이 시장은 과감히 건드린 게 약진의 배경이라는 평가다. ‘촛불민심’ 저변에는 사회 양극화와 소득 불평등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흐르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특히 취업난으로 앞날이 불안한 10∼20대 젊은 층의 불만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 이 시장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 졸업 후 공장생활을 했다. ‘무수저’를 자칭하는 이재명 화법은 대중 체증을 뚤어주는 ‘사이다’로 작용할 수 있다. 윤 전 장관은 “문 전 대표나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그런 고민이 없었으니 설득력이 약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이재명 현상’이 일시적이지 않으면 문 전 대표에겐 위협적일 수 있다. 김종인 전 대표는 지난 6일 “이 시장 상승세에 문 전 대표에 대한 회의론이 생길 것”이라고 했다.

정치권 안팎에선 이 시장과 문 전 대표 지지율이 역전되는 순간 돌풍이 태풍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탄핵안이 부결되면 이 시장이 한국판 ‘트럼프’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민 분노가 폭발하면 기성 정치인은 죄다 후폭풍에 날아갈 수 있다는 시각에서다. 결국 분노를 알아주는 아웃사이더는 홀로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여권에겐 꼭 필요한 반기문 몸값 상승

최순실 파문이 초토화한 여권. 새누리당은 부패집단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내년 대선은 비관적이다. 안 그래도 빈약한 대선 자원은 더 쪼그라들었다. 김무성 전 대표는 대권 도전을 포기했다. 남경필 경기지사는 당을 떠났다. 유승민 의원은 좀체 뜨지 않고 있다. 탄핵이 결정되면 여건은 한층 열악해진다. 그런 만큼 반기문 주가는 치솟을 가능성이 높다.

탄핵은 친박 주류의 퇴장을 의미한다. 이정현 대표와 친박 지도부는 물러날 수 밖에 없다. 비박계가 당권을 잡으면서 당 해체나 재창당을 추진하는 게 정상적 수순이다. 여당이 당명을 바꾸고 신장개업을 하면 반기문 영입이 본격화할 것이다. 비박계가 조기 대선을 치르려면 반 총장을 업고라도 모셔와야할 판이다. 친박이 당권을 잡고 있는 한 반 총장이 들어올 리 만무하다. 반 총장 측근은 “친박쪽에서 구애했을 뿐 친박쪽 인사가 아니었다”며 신당 창당설을 주장했다고 한다. 그러나 반 총장은 “어느 누구도 저를 대신해 발언하거나 행동한다고 주장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국내 정치권 관측을 일축한 것이나 선택의 폭을 넓히겠다는 의도도 엿보인다.

반 총장은 리얼미터 조사에서 18.2%로 2위를 지켰다. 최순실 파문에도 지지율은 꾸준하다. 새누리당으로선 절대 놓쳐선 안되는 대어인 셈이다.

친박 지도부가 버티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탄핵안이 210표 안팎으로 턱걸이 통과하는 경우다. 친박이 ‘12월21일’ 사퇴 약속을 뭉갤 수 있다. 친박과 비박의 계파 전쟁이 벌어지게 된다. 비박의 탈당과 신당 창당 여부에 따라 반 총장 선택은 유동적일 수 있다. 

허범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