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6-12-10 18:40:00
기사수정 2016-12-10 17:55:44
‘화염병 스티커’로 분노 던지고 ‘10년치 달력’으로 “망각하지 말자” 외쳐 / 중고생 교복부대도 “세월호·국정교과서 이대로 안된다”
“마음 같아선 화염병, 아니 더한 것도 하고 싶지만 ‘화염병 스티커’로 대신했습니다. 가져가셔서 청와대 앞에 마구 붙여주세요!”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다음날인 10일 서울 광화문에는 어김없이 10∼30대 청년들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화염병 대신 이를 그린 스티커를 제작하고, ‘잊지 말자’는 의미로 지난 10년 주요 사건을 정리한 달력을 판매하는 등 젊은피다운 패기와 재치가 돋보였다. 탄핵 가결 후 광장의 열기에 더해진 이들 청년의 목소리는 한파와 무거운 시국으로 얼어붙은 공기를 누그러뜨렸다.
청년당은 이날 오후 2시쯤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지난주에 이어 ‘청년 분노 폭발대회’를 가졌다. 분노대회를 하며 시민들에게 나눠준 ‘나는 오늘 #즉각퇴진 #분노의―화염병을 던진다’는 문구의 화염병 스티커가 이목을 끌었다.
약 2시간여 동안 진행된 자유발언 시간에는 10명 내외의 청년이 나와 목소리를 높였다. 청년당 추진위원회 발기인 장송회씨는 “탄핵은 가결됐지만 이제 시작”이라고 분노 폭발대회 취지를 밝혔다. 자유발언에 나선 한 30대 청년은 “탄핵을 가결한 건 의원이지만 이끌어 낸 건 국민”이라며 “당장 국민 앞에 대통령은 사죄하고 재벌, 새누리당도 공범이므로 단죄해야 한다”고 소리쳤다. 이어 마이크를 잡은 정종성(36)씨는 “박근혜 대통령 내각에 있는 사람들은 다 똑같으니 내각 총 사퇴 및 새누리당을 모두 처벌해야 한다”며 “탄핵은 거들 뿐이다. 이 국면을 죽 쒀서 개 줄 수 없으니 다 함께 다시 촛불을 들자”고 강조했다.
지난 10년간 있었던 주요 사건을 잊지 말자는 뜻의 ‘십년이명충분혜’라는 10년치 달력도 등장해 주목을 받았다. 대전에서 온 취업준비생 김선재(31)씨는 “텀블벅이라는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제작비 400만원을 모아 1000여개의 10년 달력을 만들었다”며 “오늘 200개 정도 들고와 첫 판매를 시작했다. 시민들에게 많은 응원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군대에서 세월호 유가족의 집회 장면을 뉴스로 보며 망각의 심각성을 깨달았다는 김씨는 이를 반성하는 의미에서 지난 10년의 기록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2007년부터 지난 12월까지 일어난 ‘잊지 말아야 할 사건’을 정리해 달력에 기록했다. 달력에는 2008년 2월 BBK 수사 발표, 2009년 1월 용산 참사, 2015년 11월 세월호 참사 특별법 통과 등을 비롯해 최근 232만 촛불집회 대기록까지 빠짐없이 적혀 있다.
서울광장에서는 거리로 나온 10대 중·고등학생들이 당당히 자유발언에 나섰다. 시험기간인데도 교복을 입고 핫팩을 쥔 청소년 100여명이 ‘중고생 혁명’이 쓰인 깃발을 들고 모였다. 이들은 중고생 혁명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전국 단위로 모인 것으로 파악됐다. 중고생 혁명 페이스북 개설자 최준호(18)군은 “역사적으로 민주주의 현장 중심에는 학생이 있었다”며 “학생들을 모으기 위해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었고 집회 때마다 평균 300∼700명의 중·고생이 모인다”고 답했다.
자유발언에 나선 김예슬(안산 성안중3)양은 “교과서에는 박근혜 정부의 공약이 나와있는데 정작 학생들이 죽어갈 때 머리손질이나 하고 있었다”며 “친구 사촌언니가 세월호 사건으로 희생돼 친구는 아직도 우울증이 있다. 국정교과서도 이대로 안된다. 중·고생이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행사를 지켜보던 최연수(서울 봉영여중3)양은 “교실에서 토의를 하던 중 여기서 말해봤자 변화가 없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래서 참여를 결심하고 거리로 나왔다”고 밝혔다.
정지혜·안승진 기자 wisdo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