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6-12-20 15:11:12
기사수정 2016-12-20 15:11:12
말하는 자동차·로봇 회계사… 일본 '인공지능 대중화' 성큼
“빨리 와 줘, 키트.” 한 남성이 손목시계에 대고 말하자 자동차가 혼자서 달려온다. 1980년대 TV 드라마 ‘전격 Z작전’(Knight Rider)에 나오는 장면이다. 이 자동차는 인공지능(AI)을 탑재하고 있어 주인공과 대화를 나누고 스스로 판단하고 혼자서 주행도 하는 ‘파트너’다. 30년쯤 전 상상에 불과했던 그 AI 기술이 이제는 현실로 바짝 다가왔다. 자동차 제조사 혼다가 내년 1월 감정인식 AI를 탑재한 자동차를 공개하기로 하는 등 최근 일본에서는 AI가 일상생활 속으로 속속 스며들고 있다.
◆어느새 사람 옆에 나란히 선 AI
일본의 정치 현장에 머지않아 AI가 등장할 전망이다.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국회의원의 질문에 대한 정부 답변서 초안을 AI가 작성토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경제산업성이 연내에 실험을 마친 뒤 내년에 각 부처에서도 추가 실험을 거쳐 실제 도입 여부를 최종 결정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경제산업성은 과거 5년 동안의 국회 심의 의사록을 AI에 학습시키고 있다. AI는 방대한 기초자료 수집이나 자료정리를 단시간에 마칠 수 있어 공무원들의 심야 연장근무를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람의 표정이나 목소리를 인식하고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인간형 AI 로봇 ‘페퍼’(Pepper)는 이미 널리 보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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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프트뱅크가 만든 감정인식 인공지능 로봇 ‘페퍼’. 소프트뱅크 홈페이지 캡처 |
개발사인 소프트뱅크는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앱) 개발을 통해 페퍼의 활약 가능한 영역을 넓히고 있다. 필요한 앱을 설치하면 노인과 대화를 나누고 약 복용 여부 등을 알려주며 아이와도 놀아줄 수 있다. 페퍼는 피자 주문을 받고 계산까지 할 수 있으며, 행사장 도우미 등 ‘아르바이트’에 나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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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다가 내년 1월 미국 네바다주에서 열리는 ‘CES 2017’에 출품하겠다며 최근 공개한 인공지능 탑재 전기자동차 ‘NeuV’ 혼다 홈페이지 캡처 |
혼다는 소프트뱅크와 손잡고 AI를 통해 운전자의 감정을 파악하고 대화할 수 있는 차량을 공동 개발하고 있다. 내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2017에서 감정인식 AI를 탑재한 자율주행 전기자동차 ‘뉴V’(NeuV)를 공개하겠다고 최근 밝혔다. 30년 전 드라마가 조만간 현실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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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일본에서 일반도로 실험에 투입된 무인 자율주행버스. 세계일보 자료사진 |
자율주행차는 일본에서 이미 도로주행 실험도 시작됐다. 지난달 아키타현 센보쿠시에서 운전석과 핸들(스티어링 휠)이 아예 없는 ‘로봇 셔틀’ 자율주행버스가 현지 주민 등을 태우고 다자와 호반 도로를 달렸다.
다른 차량의 출입이 통제된 도로에서 시속 10㎞ 정도의 속도로 400m 정도를 왕복 주행하는 데 불과했지만 머지않아 일반 도로에서도 실험이 이뤄질 전망이다. 고령자가 많고 대중교통이 불편한 시골 지역 등에서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산업현장에 깊숙이 파고든 AI
산업현장에서도 AI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미쓰비시중공업과 히타치제작소는 AI를 활용한 석탄화력발전소의 운전 제어시스템을 인도의 타타그룹과 공동개발하고 있다. 원료인 석탄의 수분함량 등 품질과 종류에 따라 연소 환경을 조정함으로써 최적의 가동 환경을 선택하고 유지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석탄 화력발전소는 증기터빈과 발전기, 보일러 등 많은 부품이 있어 이를 AI로 연동해 자동제어한다. 이미 동남아시아 전력회사의 석탄 화력발전소에서 실증실험에 착수했다.
로봇 은행원도 속속 도입되고 있다. 일본 최대 은행인 도쿄미쓰비시UFJ은행에는 말하는 인간형 로봇 ‘나오’가 있다. 일본어·중국어·영어 등 모두 19개 언어를 구사하며 고객의 행동과 표정을 분석해 스스로 반응할 수 있다. ‘인력 파견’에 투입되는 로봇도 있다.
가와사키중공업이 개발한 산업용 로봇 듀아로(Duaro)를 대형 리스업체인 도쿄센추리 리스가 기업 등에 파견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듀아로는 전자부품 공장에서 부품을 운반하거나 조립할 수 있으며 도시락 공장에서는 식재료나 간장 등을 용기에 담고 포장할 수 있다.
전문가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회계감사에도 AI가 활용될 전망이다. 신니혼칸사호진(新日本監査法人)은 AI를 사용해 부정회계를 방지하는 차세대 감사시스템 개발에 뛰어들었다. 회계사의 노하우를 AI에 학습시켜 기업의 장부 데이터 등을 해석토록 해 부정 의혹이 있는 거래를 조사한다.
일반적인 것보다 대폭 높은 단위의 거래일 경우 부정 가능성을 점검한다. 또 재무제표를 해석해 과거에 실제로 부정이 있었던 기업의 사례와 비교해 유사한 특징이 없는지를 찾아낸다. AI가 분석한 정보는 담당 회계사와 품질관리담당 부서에 보고된다. 이 시스템은 2∼3년 후 실용화가 목표다.
◆사람의 판단력을 뛰어넘은 AI
AI는 인간 중에서도 뛰어난 사람이 맡고 있는 전문영역도 넘보고 있다. 지난 8월에는 의사가 진단하지 못한 질병을 AI가 찾아내 환자의 목숨을 구한 사실이 공개됐다.
도쿄대 의과학연구소가 도입해 2000여건의 의료논문을 학습시킨 미국 IBM이 개발한 AI ‘왓슨’이 그 주인공이다.
급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은 60대 여성 환자가 이후 수개월간 치료를 받았으나 차도가 없었다. 그러나 이 환자의 유전자 변화 데이터를 입력하자 왓슨이 10분 만에 ‘2차성 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내리고 다른 항암제를 제안했으며, 그 환자는 치료에 성공해 퇴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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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일본기원에서 조치훈 9단(오른쪽)이 인공지능 바둑 소프트웨어 ‘딥젠고’와 대국하는 모습. 교도연합뉴스 |
지난달에는 조치훈 9단과 일본의 AI ‘딥젠고’(DeepZenGo)의 바둑 대결이 펼쳐졌다. 3차례 대국에서 조 9단이 2승1패로 승리를 거뒀지만, 딥젠고는 프로 바둑기사를 꺾은 일본의 첫 AI라는 기록을 남겼다.
미국 구글의 바둑 AI ‘알파고’가 지난 3월 한국에서 이세돌 9단과 겨뤄 4승1패로 승리를 거둔 것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성적이다. 하지만 지난 3월까지만 해도 아마추어 강자 수준이던 딥젠고는 이후 알파고의 ‘딥러닝’ 기술을 채용했고, 이후 프로 기사들의 대국 기록을 대량으로 학습하면서 불과 6개월 만에 최고수준의 프로 기사를 위협하는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인간의 고유 영역으로 여겨지던 문학 분야에서도 AI가 손을 뻗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AI가 쓴 공상과학(SF) 소설이 ‘호시 신이치’ 공상과학문학상에서 1차 심사를 통과하기도 했다. 사람이 등장인물 설정과 이야기의 줄거리 등을 구성하면 AI가 단어를 조합해 문장을 만드는 방식으로 쓰였다. 대략 80%는 사람이, 20%는 AI가 썼다. 그러나 2년 후에는 AI가 100% 창작할 수 있는 수준까지 만들겠다는 게 이 AI를 만든 연구진의 계획이다.
도쿄=우상규 특파원 skwo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