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문화재] 종묘를 보면 역사가 보인다

영화 ‘사도(思悼)’는 조선의 21대 임금인 영조와 아들인 사도세자가 중심이며, 의미 전달을 위해 선택한 영화 속 건축공간은 종묘(宗廟·사진)다. 종묘는 왕실의 엄중함과 왕조의 영속성을 보여주는 조선 최고의 유교건축으로, 중심건물인 정전(正殿)은 19칸에 이른다.

어떤 사람들은 종묘 정전을 서양의 파르테논 신전에 비교하기도 한다. 현재의 모습만 보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종묘 정전은 7칸에서 시작했다. 왕대(王代)가 계속되면서 모셔야 할 신위가 증가함에 따라 1546년에 11칸이 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된다. 1608년에 11칸으로 재건된 후, 1726년에 15칸, 그리고 1836년에 현재와 같은 19칸이 되었다. 왕조와 함께 성장한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문 유기적인 건축이다.

그래서 종묘에는 성장의 흔적이 남아 있다. 건물 안에 안치된 신위만으로도 조선이라는 나라의 역사적 흐름을 느낄 수 있지만, 건축에 나타난 시간의 흔적을 찾다 보면 그 느낌은 배가 된다. 종묘 정전은 서쪽을 기준으로 동쪽으로 늘어났는데, 월대 앞면에는 정전이 7칸이었을 때, 11칸이었을 때, 15칸이었을 때의 중앙에 설치된 돌계단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리고 기둥 위에 짜여진 공포를 구성하는 익공(翼工)이라는 새 날개 모양으로 생긴 부재의 모양새는 조금씩 다르다.

돌계단이야 월대가 넓어지면서 위치가 달라졌다지만, 익공 부재는 왜 모양을 다르게 했을까. 종묘 정전의 증축에는 조선 최고의 목수와 석수가 당대 최고의 도구와 기법을 사용하여 나무와 돌을 다듬었다. 그들은 앞선 계단의 흔적을 그대로 둠으로써 역사를 존중하고, 유교건축의 지엄함을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 안에서 자신들이 가진 당대의 기법을 역사로 남겼다.

누군가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다’고 하였다. 종묘 정전을 바라보면서, 오늘을 사는 우리가 후손들에게 남겨줄 부끄럽지 않은 당대의 모습에는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 본다.

조상순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