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우리] 통일안보 대전략 만들자

미·중 갈등에 러시아 변수 부상
불확실성의 시대 철저 대비 필요
한·미동맹으로 위기 관리하고
미래지향적인 큰 그림 그려야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정세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트럼프 당선 이후 미·중 간의 기싸움이 점차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의 변수가 국제무대에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자가 러시아와의 관계개선을 표명하자 일본은 재빨리 푸틴을 야마구치(山口)현으로 불러들여 정상회담을 했지만 큰 소득을 얻지 못했다. 이러한 미국의 새로운 움직임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에게 불안감을 주고 있다.

중동의 전황도 급변하고 있다. 시리아 알레포에서 아사드 정부군에 대항했던 반군세력은 국제사회의 지원과 관심에도 수많은 희생자를 낸 채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독재자 아사드의 승리는 단연코 푸틴의 강력한 군사적 개입에 따른 결과였다. 오바마 행정부의 유약함을 비판했던 트럼프 당선자가 시리아 문제에 대해 과연 향후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그가 러시아와의 친선관계를 중시하며 시리아 아사드 정권의 전횡에 눈을 감는다면 이는 한반도 주변국에게도 상당한 전략적 함의를 제공할 것이다. 중국, 러시아는 물론 북한도 시리아 사태의 교훈을 검토하며 미국 신임 행정부가 대한민국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어떤 희생을 감수할 수 있는지 파악하려 할 것이다.


홍규덕 숙명여대 교수·국제정치학
일부 국제관계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대러시아 관계 개선 노력은 중국과의 대결에 힘을 비축하기 위한 차별화된 전략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러시아와 중국을 확연히 분리함으로써 지역 패권국으로 부상하는 중국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계산된 의도라는 것이다. 최근 발간된 미국 내 보고서들은 이러한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미국의 싱크탱크 랜드연구소가 발행한 ‘중국과의 전쟁’이라는 보고서를 보면 “중국의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증강된 군사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이중안전장치를 확보해야 하며, 일본과의 협력을 매우 중요한 변수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로버트 마티네이지가 작성한 ‘새로운 상쇄전략’이란 보고서 역시 “중국 대비 상대적인 군사적 우위 유지가 불가능할 경우 한·미·일 3각 협력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미 국방부 로버트 워크 부장관은 지난 4월 나토와의 합동회의에서 “미국이 중국과의 기술적 우위를 다시 벌려 놓는 것이 매우 중요한 우선순위”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일련의 행동과 발언을 볼 때,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경제를 압박하며 동시에 중국 경제가 상대적으로 취약할 시기를 최대한 활용하고자 노력하는 것 같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격동의 시대에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역할을 새롭게 맡을 수 있으며, 어떤 부담을 감내할 수 있는지 보다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국제정치학자들은 국력의 요소 중 역량과 전략은 상호 불가분의 관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국가역량의 확대에 매진한 반면 전략에는 소홀한 점이 있다. 역량의 부재는 세계 전략, 지역 전략 등 대전략의 결여로 연결됐다. 대전략의 부재 속에 살다 보니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대응보다는 즉흥적이거나 미시적 접근으로 일관하기 일쑤였다. 국내 정치적인 도전도 만만치 않다. 정치리더십의 공백 속에 국민들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과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국민들이 여전히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버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외교안보팀은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흔들림 없는 자세로 위기관리를 해 나가야 한다. 대선을 앞두고 국내정치가 분열되고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더 커진 만큼 새로운 리더십은 ‘미래지향적 통일비전’을 바탕으로 국민 대통합을 이뤄내야 하며, 국민들이 통일 이후 국제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큰 그림을 그려줘야 한다.

홍규덕 숙명여대 교수·국제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