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6-12-30 18:38:11
기사수정 2016-12-30 18:38:11
‘사랑의 열매’ 희망 나눔 캠페인
“‘사랑의 열매’를 드립니다. 나눔에 동참해 주세요!”
지난 26일 오후 3시쯤 서울 지하철 4호선 수유역. 서울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관계자와 모금회 소속 사랑의 열매 나눔봉사단원 등 13명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본지 배민영 기자도 사랑의 열매를 형상화한 인형 탈을 쓴 채 ‘희망 2017 나눔 캠페인’에 동참했다. 하지만 캠페인이 진행된 2시간 동안 기부하고 지나간 시민은 열댓 명 남짓. 경기 불황과 어수선한 시국 때문인지 연말연시 소외된 이웃을 위한 나눔의 정도 꽁꽁 얼어붙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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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후 서울 강북구 수유역에서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 나눔봉사단이 마련한 쪽지 게시판에 시민들이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하상윤 기자 |
캠페인은 상·하행선 개찰구 옆에 7명씩 일렬로 서서 한쪽에서 “사랑의 열매를 드립니다”라고 외치면 반대편에서 “나눔에 동참해 주세요”라고 맞받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기자도 인파를 향해 손을 흔들며 관심을 끌고, 행인의 팔을 손가락으로 쿡 찌르며 나눔의 의미를 포스트잇에 적는 캠페인에 참여해 달라고 호소했다.
한 중년 여성이 배지를 받고 반색하며 “아이고, 예쁘다. 그냥 받아요 되는 거예요”라고 묻기에 “자율적으로 기부하면 된다”고 답했다. 그랬더니 이 여성을 비롯한 대다수가 배지만 받고 모금함을 그냥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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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지하철 수유역사에서 한 어린이가 서울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모금함에 3000원을 넣고 있다. 하상윤 기자 |
정신 없이 배지를 나눠주는 사이 구호 순서가 바뀌어 “나눔에 동참해 주세요”라는 외침이 먼저 나오자 배지 받기를 거부하는 경우가 2배가량 늘었다. 한 시민은 “(배지)받으면 돈 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가뜩이나 돈 들어갈 곳 많은데…”라고 투덜거렸다. 봉사단 윤성심(63·여)씨는 “기쁜 마음으로 활동해 왔는데 좀 허탈하다”며 “사람들이 냉랭해졌다”고 말했다.
모금회 측이 준비한 배지 600개는 애초 오후 5시로 예상했던 마감시간보다 20분 빨리 동이 났다. 그러나 행인 대부분이 역사 한쪽의 모금함에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다만 10, 20대의 기부 참여는 두드러졌다. 김동성(16)군은 “나누면 서로 오가는 정이 깊어지고 마음도 뿌듯하다”며 “친구들에게도 기부를 권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모금회 관계자는 “2년 전부터 기부에 대한 관심이 전반적으로시들해지고 있지만 최근 학생들의 참여가 늘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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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사랑의 온도탑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경기 불황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등 어수선한 시국으로 기부가 저조한 탓에 온도 눈금이 지난해 이맘때 72도에 10도가량 못 미치는 61.9도를 가리키고 있다.
남정탁 기자 |
캠페인을 마친 뒤 6개월 전부터 이곳에 설치돼 있던 모금함을 개봉했다. 1만원권 5장과 5000원권 2장 등 지폐가 11만5000원 들어 있었다. 서울 모금회 이윤나 배분사업팀 대리는 “보통 거리 모금을 하면 한 번에 7만∼8만원이 모이는데 오늘은 15명 정도가 4만∼5만원을 기부했다”며 “동전과 교통카드는 내년 1월 초 일괄적으로 수거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캠페인을 마치고 50장의 포스트잇에 적힌 나눔의 의미를 살펴봤다. “행복”, “희망”, “나눌수록 더 커지는”과 같은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겨울비에 우산을 쓰고 종종걸음으로 사라지는 시민들의 뒷모습을 보며 녹록지 않은 현실의 벽을 절감했다.
박진영·배민영 기자 goodpoint@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