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7-01-01 16:06:59
기사수정 2017-01-01 22:08:05
병신년 마지막 날인 31일에도 박근혜 대통령 퇴진 등을 촉구하는 촛불이 어김없이 타올랐다. 이번 10차 촛불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으로 서울에만 100만명, 전국적으로는 110만4000명이 운집했다. 1∼10차 집회에 참가한 연인원이 1000만명을 넘어선 것이다.
이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각계각층 시민 10명에게 새해 소망을 들어 봤다. 시민들은 광장의 촛불 민심을 변화의 동력으로 끌고 갈 지도자다운 지도자를 열망하면서도 저마다 정유년에 대한 기대와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김용택(59) / 시인
“촛불집회는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시민 혁명이다. 구속되거나 다친 사람이 없다. 시민들의 정치·사회의식 품격이 높아진 것이다.
유신 체제 이후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기득권 세력의 부패가 극에 달했는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이들이 몰락의 길을 걷게 됐다. 국민들이 ‘이건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다’,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 거리로 나섰다. 촛불집회로 우리 모두 국민이 (나라의)주인이란 점을 확인했고 주인 의식을 갖게 됐다.
그간 국민들은 경제 성장에 얽매여 살아왔다. 재벌이나 언론들이 경제가 위기라고 할 때 불안감을 느꼈다. 돈만 벌고 출세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사이 부익부 빈익빈 구조가 굳어지고 개인주의화가 극단적으로 진행됐다.
이제 전혀 다른 나라가 돼야 하고 충분히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본다. 개인적인 욕심이 아닌 행복과 희망을 얘기하는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인간의 존엄이 존중되고 상식과 진실이 통하는 사회,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는 정의로운 사회 말이다.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삶이 바뀌어야 한다.
공은 정치권으로 넘어갔다. 국민을 위한 진짜 정치를 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국민들이 바로 들고일어설 것이다. 국민들도 이념이나 정파, 지역을 떠나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을 (지도자로)뽑아야 한다.”
◆이현진(29·여), 이훈종(32) / 직장인
“촛불집회 연인원 1000만 달성에 보탬이 되려고 같이 나왔다. 1년 반 연애 끝에 올 가을 결혼한다. 올 한 해는 신혼 생활에만 집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임동엽(17) / 울산 학성고 2학년
“방학을 맞아 중학교 동창 2명과 서울로 1박 2일간 여행 왔다가 촛불집회에 참가하게 됐다. ‘송박영신(送朴迎新·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는 송구영신(送舊迎新)에 박 대통령 성을 넣은 신조어)’이 이뤄져 깨끗한 세상이 되길 바란다. 또 울산은 수험생뿐 아니라 고등학교 1학년과 2학년도 짧게는 오후 10시, 길게는 오후 11시30분까지 야간 자율 학습(야자)을 하는데 야자가 완화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김연경(24·여) / 일본 유학생
“일본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있는데 일주일간 방학이라 귀국해 촛불집회에 처음 와봤다. 집회를 언론 보도를 통해서만 접했을 때는 집회가 경쾌한 축제인 것만 같았는데 막상 와서 보니 좀 다르다. 사람들이 진지한 태도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고 생각이 깊어졌다. 취업은 한국에서 하려 하는데 일자리가 많아져 취업난이 개선되면 좋겠다.”
◆박휴종(42) / 영화 촬영 감독
“앞으로 살면서 이런 경험은 다시는 없을 것만 같다. 만감이 교차하는 한 해였다. 실망감이 극에 달했지만 시민들에게서 희망도 봤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사람들이 정치와 정의에 눈을 떴다고 생각한다. 전국영화산업노조 소속인데, 노조가 2012년 대선 때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일명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당시 노조가 문 후보에게 영화 정책을 건의한 바 있다. 새해에는 하는 일이 다 잘되고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길 바랄 뿐이다.”
◆주창환(57) / 제조업체 운영
“한 주도 거르지 않고 매주 주말 촛불집회에 나왔다. 오늘은 아내와 함께 왔다. 신년에는 국민을 위한 정권이 들어섰으면 하는 바람이다. 중국 등에 간접적으로 수출하는 업체를 운영하고 있어 탄핵 정국보다는 해외 경기 등에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으로 대중 수출이 힘들어졌는데 새로 출범하는 정부가 이 문제를 외교적으로 잘 해결하길 바란다.”
◆곽민성(13) / 중학교 1학년
“우리나라에 도움 되는 좋은 사람이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 박 대통령은 감옥에 갔으면 좋겠다. 세월호 참사로 많은 사람이 희생됐기 때문이다.”
◆곽한대(46) / 사업가
“2016년 한 해를 의미 있게 보내려고 아내, 두 아들과 함께 광화문광장에 왔다. 민주주의 핵심은 참여인데, 아이들이 민주 사회의 시민으로서 자립심을 갖고 자기 몫을 다할 수 있게 가르치고 싶다. 사업을 한 지 13년 됐는데 경기가 너무 안 좋다. 박 대통령이 물러나 정국이 수습돼 경제가 제자리를 찾았으면 좋겠다. 또 국민들이 허탈감에서 벗어나고 상처를 치유할 수 있게 각계 인사들이 다양한 의견을 내놨으면 한다.”
◆이종우(49) / 직장인
“정유년은 비정상의 정상화가 실현되는 한 해가 됐으면 한다. 비정상적인 것들이 바로잡혀야 한다. 또 모든 사람이 노력하면 잘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박진영 기자, 사진=하상윤 기자 jy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