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기획] 지구 밖으로 쏘아 올린 인간의 꿈… 우주개발 무한경쟁

[세계 최초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발사 60주년] 우주 알리는 신호탄
1957년 10월4일 소련(러시아)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의 발사에 성공했다. 스푸트니크 1호는 인류에게 ‘우주’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세계는 경악했다. 특히 미국과 서유럽 국가 등이 겪은 충격은 2차 세계대전 때의 ‘진주만 공습’에 버금갈 정도였다. 이는 훗날 ‘스푸트니크 쇼크’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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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푸트니크 쇼크

스푸트니크 1호는 소련 우주계획의 선구자인 콘스탄틴 치올콥스키의 탄생 100주년에 맞춰 발사됐다. 바늘 같은 4개 안테나가 박힌 금속구. “삐…삐…삐…삐…” 하는 소리를 세계로 송신했다. 같은 시간 미국 워싱턴 소련대사관에서 연회를 즐기던 미국 과학자들은 처음 이 소식을 접하고 비웃음을 던졌다. 그들은 농업국가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소련의 우주과학 기술이 인공위성을 쏘아 올렸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그때 연회장에 있었던 뉴욕타임스의 월터 설리번 기자가 스푸트니크 1호 발사 소식을 보도했고 이내 스푸트니크 쇼크가 도래했다. 당시엔 스푸트니크 1호가 워싱턴을 지날 때마다 “크하하하하”라는 비웃음 신호를 보낸다는 자조적인 유머도 유행했다. 스푸트니크 1호 발사 성공 이후 세계는 우주개발 경쟁에 본격 돌입했다. 냉전시대와 맞물려 예산에 구애받지 않는 경쟁이 달아올랐고 우주과학은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다. 우주개발을 통한 대륙간 탄도미사일 기술의 발전이라는 시대적인 요구도 컸다.

소련은 같은 해 11월 스푸트니크 2호를 쏘아올렸다. ‘라이카’라는 이름의 개를 태워 지구 생명체 최초로 우주를 탐험하는 기록을 썼다. 라이카는 다시 돌아오지는 못했지만 유인 우주선 개발의 효시였다. 1961년 4월12일 드디어 첫 번째 우주인이 탄생했다. 소련의 군인 유리 가가린(1934∼1968)이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우주로 나가 108분간의 나들이를 마치고 무사히 지구로 귀환했다. 유리 가가린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본 사람이었다. “지구는 파란 베일을 감싼 신부와도 같다”는 그의 평은 역사에 기록됐다.

같은 시간 미국 언론은 “철의 장막 건너편에서 역사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역사상 최초로 인류가 우주에 진출했는데, 그 사람은 공산주의자”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에 자극받은 미국은 인류를 달에 보내는 ‘아폴로 계획’을 추진했다. 1969년 7월20일 닐 암스트롱 등 3명의 우주인이 아폴로 11호를 타고 처음 달 표면에 발자국을 남겼다. 소련도 지지 않고 1970∼80년대 우주정거장을 쏘아 올리며 각축을 벌였다. 미국은 또 1981년 최초의 우주왕복선 비행에 성공했다. 화성으로 유인 우주선을 발사하는 미국의 계획도 이 무렵부터 준비됐다.

◆21세기 우주개발


1991년 소련의 붕괴는 우주개발에 큰 전환점이었다. 냉전이 종식되면서 천문학적 예산이 드는 우주개발은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하지만 미국과 러시아, 중국 등 과학 강국들은 우주기술의 명맥을 유지하며 후대에 남긴다는 철학을 견지하고 있다.

러시아는 모스크바에 ‘유리 가가린 우주인 훈련센터(스타시티)’와 ‘우주 기념박물관’을 건립해 운영 중이다. 스타시티는 1960년 개발된 이후 우주개발을 위한 소도시로 세계의 우주인을 키워낸 곳이다. 최초로 우주를 여행한 유리 가가린부터 한국 최초이자 세계 475번째 우주인인 이소연(38·여)씨도 이곳을 거쳤다. 우주 기념박물관은 러시아 국민과 세계인을 위해 러시아 우주과학 기술의 모든 것을 전시하고 있다. 이곳엔 스푸트니크 1호 모형을 포함해 보스토크 1호 등 우주로 발사한 러시아의 모든 우주선이 전시돼 있다. 유리 가가린을 포함한 역대 우주인의 물품, 기록, 자료 등도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하루 방문객만 1만명을 넘어 러시아 국민의 자부심이자 애국심의 원천이란 평을 받는다.
2015년 12월 29일 중국의 창정3호 발사.

중국도 우주과학 분야에 열을 올리고 있다. 1992년부터 우주분야에 우뚝 선다는 의미인 ‘우주굴기’를 표방하며 독자적인 우주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1992년 ‘선저우 계획’을 시작으로 2003년 10월 중국의 첫 유인 우주선인 ‘선저우 5호’ 발사에 성공했다. 또 2011년 우주 정거장 ‘톈궁 1호’를 발사한 뒤 선저우 8호와 도킹에 성공, 러시아와 미국에 이어 세계 3번째 우주 정거장 운용국가가 됐다. 특히 중국은 27만명이 넘는 인력으로 미국항공우주국(NASA)에 필적한 ‘중국 국가항천국(CNSA)’을 운영하며, 러시아의 스타시티처럼 ‘주취안 우주기지’를 보유하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 관계자는 “20세기 인류의 최대 업적이라면 우주개발 경쟁일 것”이라며 “한국은 후발주자이지만 1996년부터 우주개발에 힘쓰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오늘날 한국의 우주개발은 과시용이 아닌 기상, 해양, 통신, 환경 등 실생활에 도움이 될 다목적실용위성에 있다”고 덧붙였다.

김범수 기자 swa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