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철(64·사진) 헌법재판소장의 임기만료가 사실상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기존 관행대로라면 지금쯤 정부가 후임자를 내정해 국회에 임명동의를 요청해야 하는 상황인데 아무런 움직임도 없어 사실상 ‘연임’이 추진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2일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박 헌재소장 임기는 오는 31일 끝난다. 이명박정부 시절인 2011년 2월1일 재판관으로 취임한 박 헌재소장은 2년2개월간 재직하고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인 2013년 4월12일 헌재소장에 취임했다. 헌재소장으로 근무한 기간은 3년10개월에 불과해 초대 조규광, 2대 김용준, 3대 윤영철, 4대 이강국 등 역대 헌재소장이 6년 임기를 꽉 채운 것과 상당히 차이가 난다.
이는 현행 헌법이 헌재소장 임기를 별도로 규정하지 않아 생겨난 문제다. 4대 이강국 헌재소장까지는 재판관으로 임명됨과 동시에 헌재소장에 취임해 자연히 재판관 임기 6년 전체를 고스란히 헌재소장 임기로 보장받았다. 반면 박 헌재소장은 헌재 역사상 처음으로 재판관으로 근무하다 헌재소장으로 ‘승진’했다. 이 경우 재판관 전체 임기 6년에서 이미 재판관으로 근무한 기간을 뺀 만큼만 헌재소장 임기로 봐야 한다는 게 현행 헌법 해석의 다수설이다.
그래서 박 헌재소장은 취임 당시부터 “헌재소장으로서 내 임기는 (재판관으로서 임기가 끝나는) 2017년 1월31일까지”라고 못박았다. 헌재가 박 대통령 탄핵심판에 착수한 뒤에도 이같은 입장에는 변화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헌법 절차에 따른 연임이 이뤄지지 않는 한 탄핵심판 결론과 상관없이 31일에 퇴임식을 치르고 헌재를 떠나겠다는 것이다.
후임 헌재소장 임명권을 지닌 박 대통령은 국회 탄핵소추로 직무가 정지돼 인사권을 행사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의 권한을 넘겨받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박 헌재소장의 임기만료가 29일 남은 현재까지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헌재가 탄핵심판에 아무리 속도를 내더라도 이달 안에 탄핵 인용 또는 기각의 결정을 선고하기란 물리적으로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달 안에 결론이 나지 않고 후임자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박 헌재소장이 물러나면 헌재는 대통령 탄핵심판처럼 중대한 사안을 재판관 8명이 논의해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이와 관련해 지난 연말 황 권한대행의 발언 내용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황 권한대행은 12월21일 국회 대정부질문에 출석해 박 헌재소장 후임자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이 부분(임기만료)에 대해서는 본인(박 헌재소장)이 임박해서 다시 의사표명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는 황 권한대행이 박 헌재소장 임기만료일은 이달 31일이 아니고 헌재소장 취임일인 2013년 4월12일을 기산점으로 삼아 오는 2019년 4월11일까지로 보고 있음을 암시한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풀이다.
앞서 국회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만약 황 권한대행이 박 헌재소장의 후임 재판관을 임명한다면 국회에서 인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는 역으로 해석하면 박 헌재소장의 연임 추진에는 반대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현행 헌법은 대법원장의 경우 중임을 금지하고 있으나 헌재소장은 그런 규정이 없고 대신 모든 재판관의 연임을 허용하고 있다. 헌재소장도 재판관의 한 명인 만큼 당연히 연임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선 정부와 국회가 박 헌재소장 연임에 암묵적으로 합의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임명동의 절차를 거쳐 박 헌재소장이 정식으로 연임되더라도 새 임기는 올해 2월1일을 기산점으로 6년 뒤인 2023년 1월31일까지가 아니고 애초 헌재소장 취임일인 2013년 4월12일부터 시작해 6년을 채우는 2019년 4월11일까지로 자연스럽게 ‘조정’될 것으로 여기는 이가 많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