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약 성분과 동일한 성분의 약이 약국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으로 버젓이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보건당국은 이같은 마약성분약 판매에 대해 사실상 별다른 대책 마련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3일 보건당국에 따르면 마약성분 '러미라'와 동일한 성분인 '덱스트로메토르판' 성분으로 유통중인 약이 231개에 달했다.
덱스트로메토르판은 2003년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지정, 생산이 중단된 러미라와 동일한 성분이다. 덱스트로메토르판은 만성 기관지염이나 페렴 등의 치료제로 쓰이며, 진해거담제 작용이 뛰어난 반면 의존성과 독성이 없어 감기약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극소량으로도 환각 느끼게 해…마약 대용으로 사용될 우려
하지만 과다 복용할 경우 극소량으로도 환각을 경험하게 해주는 강력한 마약의 일종인 LSD와 유사한 환각 작용을 유발하는 등 마약 대용으로 사용될 우려가 있다. 이 약을 동시에 50~100정 복용할 경우 환각이나 혼수상태에 이르거나 심지어 사망할 수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2003년 진해거담제 '러미나'가 청소년 사이에서 환각 대용 약물로 오남용되어 사회적 문제로 지적되자 이를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러미나와 동일 성분인 '덱스트로메토르판'의 경우 '덱스트로메토르판' 단일제제나 1일 복용량 60mg을 초과하는 복합제제에 대해서만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했다.
문제는 현재 유통되고 있는 의약품 231개 중에 3개를 제외하고는 처방전 없이도 약국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의약품은 마음만 먹으면 여러 약국을 돌며 다량의 약을 구입할 수 있어, 마약으로 남용되면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반면 미국 등 주요 선진국들은 이같은 의약품에 대한 구입을 제한하는 등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미 의회는 지난 2005년 슈도에페드린류 함유 감기약을 일반인이 구입할 경우 신분증을 제시하고, 일정량(한달 기준 7.5g)을 제한하는 규제법안을 통과시켰다.
◆임의로 약 복용, 심각한 부작용에 시달리는 사람들 매년 늘어나
이런 가운데 약의 용법이나 용량을 제대로 지키지 않거나, 약을 임의로 복용했다가 심각한 약 부작용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매년 늘고 있다.
식약처에 따르면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에 신고된 의약품 부작용은 2010년 6만4143건에서 2015년 19만8037건으로 208.7%나 증가했다. 의약품 부작용 사례가 5년 새 3배나 늘어난 것이다.
연도별 의약품 부작용 보고 건수는 △2010년(6만4143건) △2011년(7만4657건) △2012년(9만2375건) △2013년(18만3260건) △2014년(18만3554건) △2015년(19만8037건)으로 매년 늘고 있는 추세다.
효능군별로는 2015년 기준 해열·진통·소염제가 2만7538건으로, 전체의 12.2%나 차지해 가장 많았다.
◆의약품 부작용 사례 5년새 3배 ↑
약 부작용의 상당수는 감기 등 일반의약품으로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약이라 더욱 주의가 요구되고 있다.
의약품 부작용이 매년 늘고 있는 것은 함께 먹지 말아야 할 병용금기 의약품을 함께 복용하거나 용법·용량 등을 제대로 지키지 않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특히 흔히 걸리는 감기약의 경우 위험하다는 자각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더욱 주의가 요구된다.
해열진통제로 가장 널리 쓰이는 '아스피린'은 습관적으로 복용하면 위장 출혈 위험을 높일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
'타이레놀'에 들어있는 '아세트아미노펜'은 1일 최대 복용량을 초과하면 심각한 간 손상과 사망을 유발할 수 있다. 아세트아미노펜의 1일 최대 복용량은 성인 기준으로 4000mg이다.
매일 3잔 이상의 음주를 하거나 간질환이 있는 경우 혈전의 생성을 막는 항혈액 응고제 와파린을 복용하고 있는 경우에도 임의대로 아세트아미노펜을 복용해서는 안된다.
해열·진통효과를 나타내는 '아세트아미노펜'은 게보린·사리돈에이정·펜잘큐정·판피린큐액 등에도 함유되어 있다.
해열진통제는 다른 해열진통제나 감기약과 같이 복용하지 않아야 한다. 특히 종합감기약에는 '아세트아미노펜'이 포함되어 있어, 타이레놀 등과 함께 복용하면 하루 투여량을 초과하게 돼 특히 주의해야 한다.
이에 대해
◆복용중인 약이 무엇인지 꼼꼼하게 기록…중복 처방 받지 않도록 해야
코막힘 증상을 개선하는 '슈도에페드린' 성분의 약은 남용하면 급격한 심장 박동을 유발하고 신경질과 불면증과 같은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이부프로펜 또는 니프로록스 등 항염증성 진통제를 장기적으로 복용할 경우 메스꺼움·변비를 동반한 위장 장애와 같은 부작용은 물론 심장 발작·뇌졸중 등 심각한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다.
마약성 진통제·감기약 오피오이드와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을 병용할 경우 호흡 곤란 등으로 사망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오피오이드는 통증 및 기침에 △벤조디아제핀 계열은 불안·불면증 치료에 △중추신경계 억제제는 수면제·근육이완제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 국내에 허가된 마약성 진통제·감기약 성분은 16개,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은 11개이며, 중추신경계 억제제는 22개성분이다.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최근 5년간 '벤조디아제핀'계 처방 건수는 1억6773만건으로, 매년 평균 3만3000건 처방되고 있다. 처방 건수의 절반 가량이 오피오이드에 대한 의존성이 높은 60대 이상 고령층이다. 처방 금액도 2389억원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올바른 의약품 복용을 위해서는 반드시 의사와 약사 등 전문가와 상담해야 한다며 현재 복용중인 약이 무엇인지 꼼꼼하게 기록해 놓고 중복 처방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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