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7-01-05 00:39:15
기사수정 2017-01-05 00:39:14
국정 개입 파문의 장본인 최순실(구속기소) 씨가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과 나눈 대화가 공개돼 파문이 예상된다. 최 씨가 정 전 비서관과 통화하며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할 말까지 직·간접적으로 제시한 정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정 전 비서관이 최 씨와의 통화를 녹음한 음성 파일(일명 정호성 파일)의 녹취록 내용을 JTBC와 TV조선이 4일 공개했다.
보도에 따르면 최 씨가 박 대통령이 국무회의나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해야 할 발언에 관해 미리 정 전 비서관에게 일종의 지침을 준 것으로 녹취록에 기재됐다.
예를 들면 6·25 전쟁 발발일을 하루 앞둔 2013년 6월24일 최 씨는 정 전 비서관과 통화하며 "많은 희생이 뒤따른 6·25에 대한 인식이 왜곡돼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다음날 국무회의에서 "많은 분들이 전쟁이 남긴 고통 속에 살고 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왜곡해서 북침이니 하는 말이 나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고 최씨와 비슷한 발언을 한다.
같은 해 10월28일 최 씨는 정 전 비서관과의 통화에서 박 대통령이 민주주의 원칙으로 일관했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는 취지로 "여태까지 민주주의를 지켜왔고 과거 시절이나 그런 것에 대해서, 그런 것(민주주의)을 했다는 얘기를 안 해도 되느냐"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은 사흘 뒤 열린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요즘 민주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저는 정치를 시작한 이후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키고 정당 민주화를 위해 노력했습니다"라고 비슷한 취지로 얘기했다고 JTBC는 전했다.
최 씨가 당시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 측을 통해 따로 언론 동향을 수시로 보고받은 것처럼 보이는 정황도 녹취록에 나타난다.
최 씨는 정 전 비서관과 통화하면서 "그렇게 (기사가) 났대. 지금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추정됨)가 그러는데"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인사의 이름이나 직책이 거론되지는 않았다.
최 씨가 정국에 관한 의견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적어보세요"라고 하면 정 전 비서관이 "예 예"라고 답변한 사례도 있었다.
검찰이 정 전 비서관으로부터 압수한 휴대전화에서 나온 정호성 파일은 그 존재는 일찍부터 알려졌으나 그간 구체적 내용이 공개되지 않아 궁금증을 키웠다.
녹취록은 최 씨와 정 전 비서관, 박 대통령 사이가 긴밀히 연결돼 있음을 보여주는 정황 자료가 될 전망이다.
다만 녹취록 내용은 최 씨가 국정에 개입한 정황을 보여주면서도 한편으로는 직접 구체적인 정책을 주무르거나 좌지우지했다기보다 '이미지 메이킹' 조언자로서 측면이 강해 보인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 사정 당국 관계자는 "정책 등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주로 이미지 메이킹이나 최씨와 정 전 비서관, 박 대통령 사이의 관계를 드러내 보여주는 성격이 있다고 생각된다"고 전했다.
4일 공개된 녹취록은 최 씨의 국정 개입 행태를 여과 없이 드러내며 특검의 수사와 헌법재판소의 박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심리에서도 중요한 증거로 활용될 전망이다.
김수미 기자 leol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