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기획] 한국 ‘4차 산업혁명’ 수준 25위 불과

대만·말레이시아·체코 보다도 낮아 / 정권 초기 개념 싸고 소모적 논쟁… 최순실 게이트로 지속 여부도 의문 저성장 늪에 빠진 한국경제의 돌파구는 신성장동력 확보다. 하드웨어 기반형 산업구조를 소프트웨어 기반형 산업구조로 바꾸고, 새 경제에 맞는 엔진을 찾아야 한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할 수 있다. 정부가 올해 경제정책 방향의 화두로 ‘4차 산업혁명’을 빼든 것도 이런 위기감에서 비롯됐다.

한국의 4차 산업혁명 적응 수준은 경쟁국에 뒤처진다. 스위스 최대 금융그룹 UBS가 지난해 노동시장 유연성, 기술 수준, 교육시스템, 사회간접자본(SOC), 법적 보호 등 5개 요소를 바탕으로 139개국의 4차 산업혁명 적응 수준을 분석한 결과, 한국의 순위는 25위에 불과했다. 대만(16위)이나 말레이시아(22위), 체코(24위)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상암동 누리꿈스퀘어에서 열린 ‘코리아 가상현실(VR) 페스티벌’의 KT 전시관을 방문해 VR 체험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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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경제를 대표 상품으로 내건 박근혜정부는 임기 내내 신산업 정책에 공들였지만 성적표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4차 산업혁명 대응책조차 실효성에 의구심이 일고 있다. 탄핵 정국으로 정부의 정책 추진 동력이 크게 떨어진 시점이라는 점에서다. 박근혜정부가 추진한 ‘창조경제’를 ‘4차 산업혁명’으로 문패만 슬쩍 바꿔 단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창조경제 주무 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의 올해 업무계획은 지난해와 대동소이했다. 박근혜정부 들어 만들어진 부처인 데다 다음 정권에서 존속을 장담할 수 없고, 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정책의 순수성까지 흠집이 나 현상유지 수준에 머문 셈이다.

정부는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는 전략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조만간 ‘4차 산업혁명 전략위원회’를 만들기로 했다. 경제부총리가 주재하고 관계부처 장관과 민간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범부처 컨트롤타워다. 4차 산업혁명은 기술 혁신뿐만 아니라 고용구조와 교육, 복지 등 사회 전반에 일대 변화를 일으키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나온 구상이다. 하지만 이 역시 정권이 바뀐 후에도 지속적으로 운영될지 장담키 어렵다.

4차 산업혁명을 위해서는 규제로 뒤엉킨 현재의 산업생태계 혁신이 절실한데 ‘규제프리존’ 특별법은 지난해부터 줄곧 국회에서 낮잠만 자고 있다. 기재부는 2016년 경제정책 방향에서 14개 시·도에 전략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프리존을 도입한다고 했다. 사물인터넷(IoT)과 드론(무인비행장치), 바이오헬스, 미래자동차 등 지역의 창조경제·미래성장을 이끌 수 있는 전략산업을 시·도별로 2개 선정한다고 했다. 그러나 법안이 국회 문턱을 끝내 넘지 못하면서 정책은 지지부진하다.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는 집권 초반부터 개념을 둘러싼 소모적인 논란에 휘말려 시동도 늦게 걸렸다. 정부와 여당조차 창조경제라는 개념을 명확하게 정립하지 못해 여의도에서 창조경제를 희화화한 유머만 난무했을 정도다.

세종=이천종 기자 sky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