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에… 줄어든 금융권 낙하산 인사

금융권 수장 속속 내부 발탁…‘최순실 게이트’ 여파 정부 입김 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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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금융사 대표이사(CEO)들이 잇달아 내부 인사로 채워지고 있다. ‘관피아’ 논란을 일으키며 정권 유력인사나 금융당국 고위관료 출신들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던 과거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지난해 12월 제25대 IBK기업은행 사령탑에 오른 김도진(사진) 행장은 30년 넘게 기업은행에서 잔뼈가 굵은 ‘기업은행맨’이다. 인천원당지점 지점장과 전략기획부 부장, 경영전략그룹 부행장 등을 거쳤다. 이로써 기업은행은 2010년 제23대 은행장으로 내부 출신(조준희)이 CEO자리에 오른 뒤 권선주·김도진까지 3연속 내부 출신 은행장을 배출했다.

차기 행장 선임작업에 돌입한 우리은행도 지난 4일 임원추천위원회에서 내부 인사 발탁 원칙을 정했다. 외부 공모를 배제하고 차기 행장 후보자 자격을 최근 5년간 내부에서 부행장급 이상(우리은행), 부사장 이상(우리금융지주) 직책을 지낸 전·현직 임원과 계열사 대표이사로 제한했다. 내부 출신인 이광구 현 우리은행장의 연임 가능성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오는 11월 회장 교체가 예정된 KB금융지주도 내부 출신인 윤종규 현 회장의 연임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회장은 국민은행에서 재무전략본부 본부장 등을 거쳤다. 윤 회장이 겸임하고 있는 KB국민은행장 직책은 금융지주 회장직과 분리될 전망이다. 이 경우 KB국민은행장에는 KB금융지주 계열사 사장·부행장급 임원 중에서 선임될 것이란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금융사들이 내부 출신 CEO를 선호하는 이유는 사내 안팎의 흐름과 무관치 않다. 무엇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청와대가 식물상태에 빠지면서 정권 차원의 낙하산 인사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A 시중은행 관계자는 “현 시국에서 정부가 무리하게 금융권 CEO 자리에 외부인사를 내려꽂기엔 부담이 크고 당사자들도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는 3월 CEO 교체를 앞두고 있는 한국수출입은행의 경우, 과거와 달리 차기 행장 후보의 하마평조차 돌고 있지 않다. 국책은행인 수출입은행은 지금까지 외부 출신 CEO들이 임명됐다. 한 수출입은행 직원은 “대통령이 탄핵되고 조기 대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높은 마당에 누가 지금 수출입은행장 자리를 맡으려 하겠느냐”고 말했다.

외생 변수뿐이 아니다. 엄혹해진 금융권의 대외환경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내부에서 꾸준히 리스크를 관리해온 인사가 금융권 수장으로 제격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계부채 문제, 목전에 닥친 미국 금리 인상 등으로 외부 변수가 커지면서 금융사들이 내실 있는 내부 인사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B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앉힌 외부인사가 CEO로 오면 (정부) 외압 등으로 원치 않은 곳에 대출이 이뤄지기도 한다”며 “과거에는 은행이 성장하는 시기였다면 이제는 리스크를 관리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고, 내부 출신들은 은행 사정을 잘 알아 조직을 안정적으로 성장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이광구 우리은행장도 최근 신년사를 통해 “철저한 뒷문 잠그기로 불확실한 경제 상황에 대처해야 한다”며 리스크 관리를 강조했다.

내부 구성원들은 이런 기류를 반기고 있다. C 시중은행 관계자는 “외부 출신 CEO는 단기적 성과에 집중해 연속성 있는 정책을 추진하지 않았고, 임원이 바뀔 때마다 은행 전략도 바뀌었다”며 “이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D 은행 관계자도 “직원들 사이에서도 열심히 하면 자신도 CEO가 될 수 있다는 동기가 부여되고 있다”고 말했다.

염유섭 기자 yuseob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