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는 게 없다”… 착잡한 삼성

이건희 회장 병석 이어 또다른 악재/구속 가능성 제기되며 위기감 고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2일 박영수 특검팀에 출석하면서 9년 만에 다시 피의자 신분으로 수사를 받게 됐다.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전무이던 2008년 2월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 등을 통한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으로 조준웅 특검팀에 피의자로 소환돼 조사받은 바 있다. 당시 불기소 처분을 받았지만, 이번에는 구속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삼성그룹 안팎은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2일 오전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 대치동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출석하고 있다.
서상배 선임기자
이날 오전 9시26분쯤 이 부회장이 승용차를 타고 서울 대치동 특검팀 입주 건물 주차장에 들어서자 주변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앞서 오전 8시부터 건물 주차장 안팎에는 200명가량의 취재진에다 삼성그룹 관계자, 시민단체 회원 등이 몰려 북새통이었다.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회원 등은 ‘국민연금 강탈 이재용 구속’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이 부회장 구속을 촉구하기도 했다.

검은색 코트를 입은 채 수행원들과 차에서 내린 이 부회장은 잠시 포토라인에 서서 “이번 일로 좋은 모습을 못 보여드린 점 국민께 송구스럽고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며 고개를 숙인 뒤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임직원들은 이날 종일 이 부회장의 조사가 끝나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며 숙의를 거듭했다. 이건희 회장이 병석에 누워 2년 넘게 자리를 비운 가운데 지난해 9월 등기이사로 취임한 이 부회장마저 구속될 경우 삼성은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전략폰인 갤럭시 노트7 발화사태로 전례없는 리콜사건이 발생하자 책임경영 실현을 위해 이 부회장이 등기이사로 나섰지만, 리콜 사건을 진화하자마자 ‘최순실 게이트’의 회오리에 또다시 휘말린 것이다. 최지성 부회장과 장충기 사장까지 일괄 사법처리될 경우 삼성은 초유의 리더십 공백사태에 직면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전문경영인 체제를 점치기도 하지만 삼성 같은 거대 그룹에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삼성 관계자는 “일선 현장에서는 차질없이 업무가 이뤄지고 있지만 인사, 투자계획, 인수합병 등 큼직한 현안은 모두 안갯속”이라며 “당분간 특검 조사결과를 지켜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김수미·김건호 기자 leol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