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보다 먼저 진화론 발견한 월리스의 ‘위대한 탐사’

‘진화론의 아버지’ 찰스 다윈은 1859년 ‘종의 기원’을 서둘러 발표했다. 20여 년간 공들인 논문을 급하게 공개한 것은 그가 1년 전 받은 한 통의 편지 때문이었다. 편지에는 다윈이 연구해 온 ‘자연선택에 따른 진화’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자신의 연구업적을 빼앗길 것을 우려한 다윈은 편지를 받은 지 2주 만에 미발표 원고 2편을 정리해 학회에 제출했다. 이듬해에는 ‘종의 기원’을 출간했다.

다윈을 두려움에 떨게 한 편지의 주인공은 영국의 자연사학자 겸 인류학자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

(1823∼1913)였다. 월리스가 다윈에게 보낸 편지는 ‘변종이 원형에서 끝없이 멀어지는 경향에 대해서’(On the tendency of Varieties to Depart Indefinitely From the Original Type)라는 논문이었다.

윌리스는 논문을 통해 동물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새끼를 낳고, 이들 중 환경에 적응한 새끼들이 생존해 자연적으로 도태가 이뤄진다는 개념의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를 제시했다. 국내에 처음 번역된 ‘말레이 제도’에는 다윈보다 먼저 진화론 개념을 찾아낸 월리스가 진화론을 발견한 계기가 된 말레이 제도 탐사기를 담은 책이다.

말레이 제도는 지금의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등 지역에 위치한 수마트라섬, 보르네오섬, 티모르섬 등으로 이뤄진 세계 최대의 제도다. 책에는 월리스가 1854년부터 1862년까지 8년 동안 말레이 제도를 탐사하며 관찰한 섬의 지질, 생물지리, 동식물의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월리스는 민족학적 관점에서 말레이 제도 여러 민족의 모습을 관찰하고 특징을 풀어냈다.

월리스는 ‘진화론의 창시자’라는 타이틀을 얻지 못했지만, 말레이 제도를 탐사하면서 생물지리학 역사에 중요한 기록을 남겼다. 그는 발리섬에서 볼 수 있는 생물들이 불과 24㎞ 떨어진 롬복섬에서는 전혀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해 아시아 대륙과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간 동물군의 차이를 나타내는 경계선이 있다는 점을 세상에 알렸다. 훗날 영국의 과학자 토머스 헉슬리는 이 경계선을 ‘월리스선’(Wallace Line)이라고 이름 붙였다.

월리스는 말레이 제도 탐사 중 12만5000여점의 생물 표본을 채집했는데, 이 중 1000여종은 월리스가 처음 발견한 생물종이다. ‘나는 개구리’로 알려진 ‘월리스 날개구리’ 역시 월리스가 말레이 탐사 중 처음 발견해 기록한 것이다. 이처럼 월리스의 이름이 붙은 것만 100여종이 넘는다.

책에는 월리스가 채집한 각종 표본을 바탕으로 당대 삽화가들이 그린 목판화 삽화가 실려 이해를 돕는다. 월리스가 다윈에게 보냈던 논문도 함께 수록했다. 원서는 월리스의 말레이 제도 탐사가 끝나고 7년이 지난 1869년 출간됐다. 1890년 10판이 출간된 이후 지금까지도 절판되지 않고 계속 출간되고 있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