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7-01-18 00:46:34
기사수정 2017-01-18 00:46:34
국정농단 사태가 사면권 농단으로 이어진 사실은 충격적이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그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사건에 출석해 2015년 광복절 특사를 앞두고 박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최태원 SK 회장의 사면을 검토했고 SK 측에 미리 사면 사실을 알려줬다고 증언했다. 최 회장은 당시 횡령 등 혐의로 징역 4년형을 받고 복역 중이었다.
안 전 수석은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국민감정이 좋지 않으니 사면 정당성을 확보할 만한 것을 SK에서 받아 검토하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청와대의 의도대로 SK그룹은 SK하이닉스의 3개 반도체 생산라인에 총 46조원을 투자한다는 발표를 내놓았다. 최 회장의 사면을 위해 청와대와 SK가 ‘짜고 쳤다’는 얘기다. 안 전 수석은 최 회장의 사면을 사전에 알려준 뒤 최 회장 사면 당일인 2015년 8월 13일 김창근 당시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에게서 ‘감사합니다. 하늘 같은 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란 문자 메지지를 받았다. 최 회장은 사면된 뒤 박 대통령과 독대하고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111억원을 냈다.
사면권은 헌법이 보장한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다. 본질적으로 사법권을 무력화하고 특정인에게 특혜를 주는 국가 권력이다. 대통령 개인의 권력이 아닌 만큼 대통령 마음대로 휘둘러서는 안 된다. 뚜렷한 원칙과 기준을 갖고 최소한의 범위 안에서 행사돼야 한다. 사면권을 남발하면 법치의 근간이 흔들린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사면권 행사는 민감한 문제다.
비록 사면권 행사가 정치적 흥정이나 정략적 차원에서 이뤄진다는 비판이 나왔어도 대통령 개인의 이익을 위해 악용되지는 않을 것이란 최소한의 믿음은 있었다. 그러나 이번 ‘사면 뒷거래’ 의혹으로 이런 기본적인 신뢰마저 송두리째 무너졌다. 국민이 헌법의 이름으로 부여한 사면권을 대통령이 기업의 약점을 잡아 모종의 거래를 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동안 검찰 수사와 특검 수사를 통해 속속 드러나고 있는 박 대통령의 국정농단 실상만으로도 기가 찰 지경인데 사면권까지 거래 수단으로 삼았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사면 뒷거래는 국민을 속이고 헌법을 유린한 중대 범죄다. 국민이 느끼는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법치 불신이 또다시 고개를 들지 않을까 걱정된다. 진상을 철저히 밝혀 헌법과 법치를 우롱한 죄를 엄하게 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