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7-01-21 13:44:30
기사수정 2017-01-21 13:59:50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21일 구속된 조윤선(51)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이날 오전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사표 수리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현직 장관 구속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은 문체부는 송수근 제1차관이 장관직무대행을 맡아 비상근무체제에 돌입했다.
|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된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1일 사의를 표명했다. 사진은 20일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 장관(오른쪽)이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들어서는 모습. 연합뉴스 |
문체부 대변인실은 21일 “조윤선 장관이 금일 오전 사퇴의사를 표명했다”며 “장관 공백에 따라 송수근 장관 직무대행(1차관) 주재로 금일 오전 9시 긴급 간부회의를 소집하고 비상근무체제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문체부에 따르면 조 장관은 서울구치소로 면회 간 가족들을 통해 사의를 표명했으며, 이 같은 뜻은 송수근 문체부장관 직무대행(제1차관)에게 전달됐다.
황 권한대행 측은 “이런 사태가 빚어진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조 장관의 사표 수리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황 권한대행이 조 장관의 사표를 신속히 수리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따라서 이르면 주말 내로, 늦어도 월요일인 23일까지는 사표가 수리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황 권한대행은 이번 구속으로 조 장관의 정상적인 직무 수행이 불가능해졌다는 점에서 사표 수리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이날 새벽 조 장관과 김기춘(78) 전 청와대비서실장을 각각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및 위증(국회에서의 증언·감정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성창호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3시44분께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성 부장판사는 “범죄사실이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구속 사유를 설명했다.
조 장관은 현직 장관으로는 처음으로 특검에 구속됐다. 조 장관은 청와대 정무수석이던 2014년 6월∼2015년 5월 블랙리스트 명단 작성 및 관리에 관여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작년 9월 문체부 장관 취임 이후에는 명단의 존재를 알고도 묵인한 혐의도 있다. 이로써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구속된 전·현직 고위 공직자는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등 5명으로 늘어났다.
조 장관 구속 소식이 전해지자 문체부는 즉각 비상근무체제에 돌입했다. 송 제1차관은 이날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사무소에서 긴급 간부회의를 소집해 “문체부는 지금 여러 방면에서 큰 어려움에 처하고, 직원들도 정신적·육체적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가운데 기관장의 공백까지 더해지는 초유의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송 제1차관은 이어 “간부들이 솔선수범해 직원들의 동요를 최소화하고 주요 국정과제와 현안사업들이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철저히 챙겨 달라”고 주문했다.
문체부는 김갑수 기획조정실장을 반장으로 하는 ‘문체부 비상업무 대책반’을 꾸려 장관직무대행의 업무수행을 뒷받침하고 주요 현안들을 수시로 점검해 대응하기로 했다. 주말에도 실·국장 간부들 중심으로 비상근무 체제를 유지해 신속한 업무 대응을 하기로 했다. 문체부는 최우선 과제인 평창동계올림픽·패럴림픽 준비에 차질이 없도록 만전을 기한다는 방침이다.
문체부 소관 부서 간부들은 문화예술, 체육, 관광 분야의 여론 수렴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현장과의 스킨십 강화에도 힘을 쏟기로 했다. 국정농단 사태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인한 후유증을 시급히 극복하기 위한 조치다. 특히 문화예술계에 대한 정치적 개입을 차단하고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대책과 실추된 문화행정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대책을 추진하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문체부가 장관 공백 상태에 놓인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14년 7월 유진룡 전 장관이 물러난 뒤 정성근 장관 후보자가 국회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낙마하면서 김종덕 전 장관이 취임할 때까지 한 달여 정도 장관 자리가 비어 있었다. 당시 문체부는 비상업무대책반을 꾸리고 매주 현안점검회의를 하는 등 장관 공백에 따른 차질을 막는 데 주력했다.
문체부는 현재 법무부처럼 장관 부재 상태가 한동안 지속할 것으로 보고 이에 대비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탄핵 정국에서 대통령 권한대행(국무총리)이 신임 장관 인선을 직접 하기보다 다음 정부로 넘길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조기 대선을 거쳐 새 정부가 출범할 때까지 최소 수개월은 기다려야 할 것으로 예상한다. 법무부는 작년 11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여파로 김현웅 전 장관이 사퇴한 뒤 2개월가까이 이창재 차관이 장관 직무대행으로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블랙리스트 작성 및 관리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됨에 따라 조 장관은 박근혜 정부 최고 ‘실세 장관’에서 영어의 몸이 됐다. 서울대 외교학과 출신인 조 장관은 사법고시 합격 후 대형 법무법인에서 변호사로 일했고, 미국 연방항소법원 근무를 거쳐 국내 외국계 은행 부행장을 지낸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인연이 닿아 정계에 입문, 2008년 18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첫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새누리당에서 665일간 대변인을 맡아 당내 최장수 기록을 세웠다.
이후 2012년 박근혜 대통령이 당 비대위원장일 때부터 당선인 시절까지 대변인을 맡아 ‘신(新)친박’으로 불렸다. 2013년 박근혜 정부 1기 내각에서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발탁됐고, 2014년 6월 사상 처음으로 여성 정무수석으로 발탁됐다. 정무수석 당시엔 국빈 방한 등의 행사에서 사실상 퍼스트레이디로 역할을 하는 등 박 대통령을 ‘그림자 수행’ 했다.
작년 4월 20대 총선 때 서울 서초갑에 출마했으나 이혜훈 후보에게 밀려 공천을 받지 못했다. 조 장관은 불과 몇 달 뒤인 8월 문체부 장관으로 발탁돼 화려하게 복귀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