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7-01-24 21:27:01
기사수정 2017-02-03 18:03:06
대권주자 인기 노린 포퓰리즘 판쳐
공약 검증·정책 책임성 강화해야
정국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특검의 수사가 정점을 치닫고 있고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심리가 속도를 내고 있지만 대선시계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만일 탄핵안이 인용된다면 대통령 궐위가 발생한 시점에서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뽑는 보궐선거를 치러야 하는데, 아직 헌재의 최종 결정이 언제 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 대선 후보자가 난립해 공약을 남발하고 있지만 아무런 감시와 통제가 없는 아노미 상태이다.
며칠 전 국회 예산정책처는 현재 우리나라의 국가채무가 641조987억원이고, 국민 1인당 금액은 1251만285원이라는 국가채무시계를 발표했다. 더욱 우울한 사실은 국가채무의 증가 속도가 경제 규모 확대 속도보다 2배 정도 빠르다는 사실이다. 나랏빚이 지난 10년간 2배 이상 늘었고,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복지비용이 급속하게 증가하는데도 정부는 증세보다는 감세정책을 우선해 국가의 재정은 날로 악화되고 있다.
잠재적인 대권 후보들은 불투명한 정치일정 속에서 나랏빚은 아랑곳하지 않고 포퓰리즘성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 국민의 시선을 끄는 정책이면 재정이 얼마나 소요되는지, 현실적으로 타당성이 있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무작정 내던지고 있다. 타당성과 재정 확보 가능성이 작은 선심성 공약으로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군복무기간 1년 단축,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청년 초봉 200만원 보장, 박원순 서울시장의 30만원 기초소득 보장, 이재명 성남시장의 생애주기별 연간 100만원 지급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박 시장의 서울대 폐지, 남경필 경기도 지사의 사교육 폐지 공약은 실현가능성이 작고 치밀한 고민이 부재한 인기 영합 공약이다.
국론을 분열시키고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정부의 재정까지도 파탄으로 내모는 포퓰리즘성 공약이 선거 때마다 쏟아지는 이유는 아무도 책임을 묻지 않기 때문이다. 당선 후 공약이행이라는 명분 아래 엄청난 예산을 낭비해도 정치적·도의적 책임만 질 뿐,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현재의 시스템이 믿기지 않는다. 그동안 학계, 언론, 시민사회에서 반복적으로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전혀 개선되지 않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정치권이 받아들일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나랏빚을 막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공식적인 공약검증기구를 만드는 것이다. 현재와 같이 언론, 학계, 시민단체가 산발적으로 공약검증을 실행하는 것은 10여 년간의 경험에 비춰볼 때 그다지 실효성이 없었다. 국회사무처 혹은 중앙선관위 산하에 공식기구를 설립해야 한다. 선거과정은 물론 선거 이후 임기 만료 시까지 공약을 철저히 감시하고 검증하는 공신력 있는 상설기구가 필요하다.
이어 선거일정이 촉박하다는 핑계로 우왕좌왕하지 않도록 공약검증과 이행관리를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선거일정이 촉박한 상황이라도 출마 선언 단계에서부터 선거 공약서 작성을 의무화해 실효성과 타당성이 없는 사업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 부실공약으로 인한 손실에 대해 언제라도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공직선거법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정당의 정책 책임성을 강화해야 한다. 개별 후보자들의 공약이 정당의 정강·정책의 틀 속에서 개발될 수 있도록 정당이 공약집을 사전에 제공해야 한다. 그 역할은 정당의 정책연구소가 맡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후보자와 소속 정당이 공약에 대해 공동의 책임을 지게 돼 최소한 주요 정당 후보들이 돌발적인 선심성 공약을 제시하는 것은 차단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유권자의 노력이 중요하다. 포퓰리즘성 공약을 남발하는 후보자는 절대 찍지 말아야 한다. 특정 인물과 정당에 대한 충성심도 때로는 필요하지만 나랏빚이 더 이상 불어나지 않도록 막는 것이 더 시급하다. ‘표’만 쫓아가는 포퓰리즘성 공약을 퇴출시키는 주된 역할은 유권자의 몫이다.
윤종빈 명지대 교수·미래정치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