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7-01-25 19:09:46
기사수정 2017-01-25 23:35:05
박한철 ‘3월13일 선고 시한 제시’ 놓고 충돌 / 이 “박 소장 발언에 충격받아 중대한 결심 할 수밖에 없다” / ‘변호사 없을 땐 심판 차질’ 노린 듯 / 유진룡 “블랙리스트 작성 총괄 부서 / 청, 좌파 인사 배제 지시 받고 구성
25일 박근혜 대통령 측이 ‘3월13일 내에 탄핵심판 결론을 내야 한다’는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의 발언에 대리인단 전원 사퇴 가능성까지 시사하며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헌재와 국회 측의 교감 의혹도 제기하는 등 탄핵심판의 불공정성을 부각시키려고 애썼다. 이에 맞서 국회 소추위원단 측은 “탄핵심판을 지연시키는 의도”라고 받아치는 등 양측이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였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이날 탄핵심판 9차 변론이 열린 헌재 심판정에서 “심판절차에 대한 의심이 들어 중대결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중환 변호사는 “박한철 소장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며 ‘중대결심’의 의미를 묻는 취재진에게 “변호사가 할 수 있는 중대한 결심이란 뻔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 대리인단 전원 사퇴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실행할 경우 재판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박 대통령 측의 언급은 '각종 심판 절차에서 사인(私人)이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을 경우 심판 청구나 수행을 할 수 없다'고 한 헌재법 제25조 제3항의 '변호사 강제주의' 원칙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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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31일 임기가 끝나는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25일 재임 중 마지막이 될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 주재를 위해 헌재 대심판정에 들어서고 있다. 남정탁 기자 |
즉, 현재 대리인단이 모두 사퇴한 뒤 박 대통령이 새로운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으면 탄핵심판 진행이 멈춰버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박 대통령으로선 탄핵심판 일정을 늦추면서 ‘불소추 특권’을 유지하게 된다. 이 기간 여론전을 벌여 지지율 반등을 꾀할 수도 있다.
그러나 탄핵심판 당사자인 대통령을 ‘사인’으로 보기 어려워 변호사 강제주의가 적용될 수 없다는 반론이 만만찮고, 헌재가 일반 헌법소원 사건에서 변호사가 사퇴한 뒤 새로 선임되지 않은 사례를 처리한 점 등을 들어 박 대통령 대리인단이 함부로 ‘사퇴카드’를 쓰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당시 헌재는 해당 변호사가 변론을 상당 부분 진행한 점을 고려해 이전까지의 변론 내용은 인정하고, 그 이후에는 당사자가 스스로 유리한 진술을 할 기회를 포기한 것으로 봤다.
이 변호사는 또 “헌법재판소와 국회의 발언 사이에 유사한 부분이 있어 (공정성에) 의심이 간다”고 밝혔다. 퇴임을 앞둔 박 소장이 “재판관 공백이 더 진행되기 전 탄핵심판 결론이 나야 한다”고 발언한 것과 전날 한 방송에 출연한 국회 측 권성동 소추위원장이 “탄핵심판은 3월10일 전에 결론날 것”이라고 말한 데에 ‘교감’이 의심된다는 취지다.
국회 측은 대통령 측의 재판부 압박과 재판 일정 지연 의도를 성토했다. 이춘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통령 측 대리인단의 전원 사퇴 시사는 사실상 탄핵심판을 거부하는 것”이라며 “(대통령 측의) 숨겨진 악마의 발톱이 살아났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권 위원장도 “헌재와 국회가 마치 내통한 것처럼 허위 주장을 하면서 중대결심을 하겠다고 이야기한 것은 탄핵심판의 공정성을 훼손하고 국민을 압박하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대통령 측이 39명의 증인을 무더기로 신청하며 탄핵심판 지연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도 모자라 탄핵심판의 공정성에도 흠을 내려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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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인터넷 방송 ‘정규재 TV’를 운영하는 한국경제신문 정규재 주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앞서 이날 탄핵심판 증인으로 출석한 유진룡(61)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총괄 실행한 것으로 알려진 문체부의 ‘건전콘텐츠 티에프(TF)’가 청와대의 ‘좌파인사 지원배제’지시를 받고 구성됐다고 밝혔다. 유 전 장관은 2014년 7월 장관직 사임 이유로 청와대의 인사 지시를 거부한 게 결정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해)5월 19일 대통령이 대국민담화에서 낙하산 인사 문제를 지적하면서 이제는 안하겠다고 하셨다"며 "그런데 바로 다음날 자니 윤을 관광공사 감사로 임명하라는 지시가 왔다"고 전했다. 이어 며칠 뒤 자니 윤을 만나 “감사 임명은 안 되고 그에 해당하는 대우를 해주겠다”고 설득해 자니 윤도 수긍했다고 말했다. 윤 전 장관은 그러나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 ‘시키는대로 하지 왜 쓸데없는 짓을 하냐’고 질책해 (장관을) 그만두겠다고 했더니 며칠 후 '다음 개각에서 빼주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주장했다.
김민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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