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7-02-08 16:39:24
기사수정 2017-02-08 16:39:24
가정법원의 입양 판결이 나기도 전에 4세 여아를 데려가 학대해 뇌사·사망에 이르게 한 양부에 대해 징역 10년이 선고됐다.
대구지방법원 형사11부은 8일 아동복지법(상습 아동학대)과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백모(53)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하고 120시간의 아동학대 치료프로그램 이수하도록 했다. 또 김모(49·여)씨에게는 징역 10월에 집행유예를 선고하고 아동학대 치료강의를 40시간 수강하도록 했다.
재판부는 “백씨의 경우 죄가 매우 무거워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고 김씨도 책임이 가볍지 않다”며 “다만 백씨가 초범이고 학대를 막기 위한 김씨의 노력이 있었던 점 등을 감안했다”고 양형의 이유를 밝혔다.
양부 백씨와 양모 김씨는 2015년 12월 서울의 A입양원에서 은비(사망 당시 4세·여·가명)를 데려가 키우기 시작했다. 이후 백씨는 지난해 7월 뇌사 상태로 응급후송될 때까지 7회에 걸쳐 손과 도구를 이용해 신체적 학대행위를 한 등의 혐의를 받는다. 김씨는 지난해 7월 은비가 뜨거운 꿀물이 담긴 컵을 잡다가 쏟아 얼굴과 어깨 등에 2∼3도 화상을 입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병원에 데려가면 학대 사실이 발각될까봐 식염수로 소독하는 것 등 외에 별다른 치료를 하지 않는 등 방임한 등의 혐의를 받았다.
백씨 측은 그간 “훈계차원의 가벼운 체벌을 했을 뿐 구타는 한 적이 없다”, “피해자 몸의 상처는 자해나 사고에 의한 것”이라고 강변해왔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해자의 머리와 눈, 발바닥 등의 시기와 강도가 다른 다수의 멍과 상처는 가벼운 체벌로 생길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법의학자의 진술 등을 감안할 때 자해로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어 “아동학대는 단순히 피해아동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기 때문에 개인의 존엄성과 사회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적극적인 사법적 개입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은비는 지난해 7월15일 경북대병원에 심정지 상태로 응급후송돼 뇌사판정을 받았고 10월29일 사망했다. 그러나 이를 알지 못했던 서울가정법원은 은비가 뇌사 판정을 받고 1주일 뒤 입양을 허가하는 판결을 내렸고 양부모는 한 달 뒤 친양자입양신고를 마쳤다. <세계일보 1월 16일자 10면 참조>
이번 사건은 지난해 4월 대구가톨릭대병원에서 1차 아동학대(의심) 신고가 이뤄졌을 때 당국이 제대로 대응했다면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더한다. 당시 경찰은 병원 측의 신고를 받고 출동했지만 양부모와 가까운 한 소아과 의사의 말만 믿고 오인 신고로 치부했다. 그러나 해당 의사는 병원으로부터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은비의 입양을 진행한 A입양원의 원장 N씨는 은비의 사망으로부터 석 달 뒤인 지난달 19일 사임했다.
지난해 10월 발족한 대구·포천 입양아동 학대·사망사건 진상조사와 제도개선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1차 아동학대 신고가 이뤄졌을 당시 수사가 미흡했고 입양기관과 양가정의 은폐 시도가 있었음을 감안할 때 아동학대 치사가 아닌 살인죄가 적용돼야 했다”고 밝혔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