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를 두고 ‘동조심리’라고 했다.
옳고 그름을 떠나 다른 사람의 행동에 기반을 둬 상황을 판단한다는 것이다. 빨간불에 건널목을 가로지르는 게 옳지 않은 걸 알면서도 누군가 건너니 따르게 된다고 설명한다. 곽 교수는 "집단주의 문화가 강한 곳에서 그런 현상이 자주 관찰된다"고 말한다.
당신이 왕복 2차선 도로의 건널목 앞에 선 보행자라고 가정해보자. 신호등에는 빨간불이 들어와 있다. 주위에는 차는 코빼기도 안 보인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건널까 말까 고민에 빠졌을 때 누군가가 먼저 건넌다면 당신은 그를 따라갈까? 마음만 먹으면 건너는 데는 몇 초도 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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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서울 청계천 광교 인근 편도 1차선 건널목의 모습. 5초 안팎이면 건널 정도로 폭이 매우 좁다. 보행자 신호는 빨간불. 하지만 건널목에 접근한 차는 보이지 않는다. 당신의 선택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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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서울 청계천 모전교 인근 편도 3차선 건널목의 모습. 파란불에 천천히 건너보니 15초 정도 걸렸다. 신호를 위반하기에는 다소 무리인 거리일까? |
광교 근처 건널목에서 만난 김하늘(25)씨는 빨간불에도 무단 횡단하는 한 남성을 보고는 “빨리 건너는 게 습관화된 것 같다”고 지적했다. 혼잣말로 “뭐가 그리 급할까. 기다리면 되는 건데”라고 내뱉는 김씨를 우연히 옆에서 지켜본 뒤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매일 광교를 지난다는 진동훈(35)씨는 “(횡단보도) 폭이 좁다고 빨간불에 건널 이유는 없다”며 “그렇게 건너나, 건너지 않으나 (목적지에 도착하는 시간 차는) 거의 똑같은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어 “빨간불에 건너지 않는 건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진씨는 빨간불에 휙 하고 건너가 버리는 시민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가 기자와 만났다.
모전교에서 만난 20대 여성은 “솔직히 차가 오지 않을 때 빨간불이어도 건넌 적 있다”고 말했다.
횡단보도 앞에서 대기 중인 보행자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신호를 지키는 광경과 맞닥뜨리기는 쉽지 않았다. 운좋게(?) 딱 한 번 모전교 근처 건널목에서 목격했다. 차가 다니지 않아 마음만 먹으면 금방 건널 수 있는데도 파란불로 바뀌기를 기다리는 '아름다운' 6인을 지켜보는 내내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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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한 번. 지난 9일 서울 청계천 모전교 근처 건널목에서 신호를 대기 중인 보행자 모두 유혹에 빠지지 않고 파란불로 바뀌기를 꿋꿋이 기다리는 시민들을 포착했다. 사진 속 6명이 주인공. 차가 다니지 않아 마음만 먹으면 금방 건널 수 있는데도 이들은 시민의식을 발휘했다. 사진은 파란불로 바뀌는 순간의 모습. |
곽 교수는 “건널목에서는 도덕적 해이의 기초 원리를 관찰할 수 있다”며 “‘나 하나쯤이야’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늘어나면 사회는 무너진다”고 경고했다. 다른 사람도 법을 위반하는 만큼 자신이 저지른 불법의 책임은 분산된다고 여기는 게 보통이라 위법행위의 수위는 점차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곽 교수는 강조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교통사고 사망자 343명 중 무단횡단이 원인을 제공한 사례는 117명(약 35%)으로 나타났다.
오는 2020년까지 인구 10만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선진국 주요 도시 수준인 2명까지 내리겠다던 서울시의 목표를 달성하기는 요원한 실정이다.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무엇보다 ‘나 하나쯤이야’라는 그릇된 시민의식을 버리고 준법의식은 다지는 일이 가장 필요해 보인다.
글·사진=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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