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무희' 최승희,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마치 잠자는 영혼을 일깨우듯… 무용을 환상으로 만들다

〈12〉 유럽 언론에 비친 모습 ②/정적이면서도 손발 움직임 강렬하고 손가락서 음악 흘러나오는 듯 황홀… /몸짓과 화려한 의상의 조화 ‘원더풀'/유럽순회공연 때 현지언론 호평 일색… “천하대장군, 독창적 환상 무언극"… 세계적 무용가와 합동공연 가지기도
최승희가 유럽 순회공연 중이던 1939년 4월 네덜란드 프린세스(princesse)극장 앞에 서 있다. 당시 사진에서 자주 보이던 여우가죽 코트와 모자 차림을 하고 있다.
“그녀의 얼굴은 첫눈에 보아도 영락없는 한국 사람이다.”

1939년 초 한 프랑스 기자 눈에 비친 최승희에 대한 첫 인상이다. 그해 2월 6일자 프랑스 조간지 ‘르 마탱’에 실린 인터뷰 기사에 나오는 내용이다. 최승희는 그날 밤 벨기에 브뤼셀 공연을 앞두고 있었다.

레이나라는 이름의 그 기자가 굳이 최승희를 가리켜 ‘한국 사람’임을 강조한 데는 곁에 다케바야시 후미코라는 일본 여인이 있어 비교를 한 듯하다. 다케바야시 역시 무용가 출신으로 최승희의 친구였다. 그 인터뷰를 다케바야시가 주선했고, 장소 또한 현지 그녀의 집이었다.
최승희(가운데)가 유럽 순회공연 중 1939년 4월 네덜란드에 들러 지인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이날 최승희의 패션 아이템은 “여우가죽 코트와 모자, 벨벳 치마”였다. 최승희는 이날 서구식으로 한껏 멋을 낸 것이다. 그럼에도 최승희의 차림새에서 동양 티가 났던지 “동양적인 특징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증거”라고 해석했다.

이날 최승희의 눈망울도 그 기자에게는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부드럽지만 잘 정돈된 느낌을 주는 눈”이라는 느낌을 전하고 있다. 무용가에게 손은 생명과 같다. 그래선지 최승희의 손을 두고는 설명이 더 길어진다. “손이 곱다. 매우 훌륭하다. 가느다란 손가락들과 피처럼 붉은색으로 굽어진 손톱은 부처의 춤에서 손목을 사용하는 작품을 연상시킨다”는 것이었다. 
최승희의 손동작이 두드러지는 ‘보살춤’. 네덜란드 신문 ‘레시덴터보드’는 1939년 최승희의 손을 이용한 연기에 대해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우아한 손가락 선을 사용하는 법을 알고 있다”고 분석했다.

네덜란드 신문 ‘레시덴터보드’ 1939년 4월 18일자에는 최승희의 손을 이용한 연기에 대해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특히 손동작 표현에서는 최승희의 무용이 인도에 뒤지지 않는다. 최승희도 특히 종교적인 무용작품에서 선보였듯이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우아한 손가락 선을 사용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최승희는 당시 유럽 순회공연의 일환으로 1939년 4월 초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등 5곳에서 공연했다. 이어 6월 8일에는 헤이그에서 열린 세계무용음악제에 참석하기 위해 다시 네덜란드를 방문한다. 최승희는 그 기회에 이븐 게오르기, 마누엘, 크로이츠베르그, 타자 코우린 등 당시 세계적 무용가들과 합동공연을 가졌다.

그 공연 후 현지 신문 ‘매드서보드’는 6월 28일자에 최승희를 주인공으로 한 장문의 기사를 싣는다. 이 신문은 최승희를 가리켜 “무용가일 뿐만 아니라 극동의 정신을 소유한 현자(賢者)”라고 치켜세우고 있다. 이 기사에서도 손과 발의 움직임을 최승희 무용의 핵심적 특징으로 묘사하고 있다.

“대부분의 동양무용에서처럼 그녀의 춤은 기본적으로 정적이면서도 손과 발의 움직임에 있어서만큼은 날카롭고 강력하다. 이 같은 손발의 동작들은 신체의 나머지 부분의 정지상태를 보완하는 듯했다.”

제호를 확인할 수 없는 당시 한 프랑스어 신문은 ‘음악’란에서 공연이 끝난 뒤 무대에서 보여준 최승희의 외모에 대한 인상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그녀는 키가 크고 부드러우면서도 장난기 어린 눈을 가졌고, 피부는 완벽히 희다.”

이 신문은 공연음악에 대해서도 꽤 상세한 묘사를 하고 있다.

“쇳소리가 나는 피리와 흐느끼는 듯한 현악의 부드러운 신음소리, 신경을 건드리는 매력을 가진 타악기들은 이 아름다운 무용가 주변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고, 그것은 마치 황홀한 유혹과도 같아 우리는 잊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음악은 대부분 우리 국악으로, 레코드판으로 재생한 것들이었다. 궁금한 점은 이 음악을 어떻게 받아들였느냐는 점이다. 벨기에 신문 ‘앙디펑덩스’는 1939년 2월 6일자 기사에 “이 음악들은 우리 귀에 때로는 시끄러운 편이었으나 이상하게도 끌리는 면이 있었다. 어떤 작품들은 타악기로만 반주되었는데 음악과 발동작과 몸짓이 완전히 일치되었다”고 전한다.

당시 유럽인은 우리 국악에 대해 조금 낯설어했지만 별다른 거부감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네덜란드 신문 ‘매드서보드’도 최승희 작품의 음악에 주목하고 있다. 평가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앙디펑덩스’ 보도와 유사하다.
최승희의 손동작을 잘 볼 수 있는 작품인 ‘석왕사의 아침’.

“그녀가 사용하는 음악은 대체로 리듬이 절제되어 있지만 흥미롭다. 무용이 진행되는 동안 연주되는 원시적이거나 심지어 태아적인 음악들의 다양성과 표현력에 놀라게 된다.”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발행하는 ‘신(新)로테르담통신’은 6월 26일자에서 “최승희의 몸짓과 음악의 동조는 놀랍다”면서 둘 사이의 조화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것은 방정식보다 더 정확해서 그녀의 팔다리 관절들이 음악소리를 듣는 것같이 느끼거나 혹은 그녀의 발동작에서 북소리를 듣게 되는 착각조차 일으키기도 한다. 소리와 동작이 너무도 정확하게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앞서 ‘르 마탱’ 인터뷰 기사에서 다케바야시는 최승희의 무대 의상에 대해서도 한마디 거든다. “각각의 작품들에 맞도록 최승희가 직접 제작한 것들이다.” 최승희가 무대 의상을 대부분 직접 만들었다는 사실은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다.

내가 최근 입수한 최승희 관련 자료에서도 같은 얘기가 수도 없이 나온다. 제자이자 동서인 김백봉의 증언도 다르지 않다. 그런 최승희의 무대 의상에 대해 유럽 신문들은 대체로 높은 점수를 주었다.

“최승희는 무용작품 발표에 품격 있는 의상을 입고 출연했는데, 대부분의 의상은 은은한 색채를 띠고 있었다”는 평가가 대표적이다. 브뤼셀 공연이 끝난 후 벨기에 신문 ‘앙디펑덩스’의 공연평에서다. ‘라 나시옹 벨주’지에서는 “그녀의 의상은 색깔 선택이 고상하고 완벽하게 재단되어 있어 최승희가 다양한 재능을 갖춘 예술가임을 증명해 주었다”고 역시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벨기에 신문 ‘앙포르마투르’는 1939년 5월 13일자 공연평에서 무대 장식과 함께 의상이 성공적인 공연의 배경이 되었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다양한 색감의 무대장식과 화려한 의상은 멈춤과 움직임의 기묘한 조화를 강조해 주어 전체적으로 미묘한 아름다움을 자아냈다”는 것이다.

이 신문은 이어 최승희의 무대공연 모습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이 공연에서 생소하면서 신기했던 것은 그녀가 춤을 추는 동안 몸체와 얼굴 표정은 바뀌지 않으면서 팔과 손동작만이 두드러졌던 것이다.”

당시 최승희의 유럽 순회공연을 보도한 현지 신문 기사 중에서는 개별 작품에 대해 구체적인 평가를 하는 내용도 더러 눈에 띈다.

1939년 6월 15일 프랑스 파리 두 번째 공연이 끝난 후 현지 유력지 기사가 대표적이다. 제호는 역시 미상이지만 ‘기생무’와 ‘천하대장군’ ‘신로심불로(身老心不老)’ 등을 언급하고 있다. 
최승희의 ‘기생무’. 최승희가 1939년 프랑스 샤이오궁전에서 2개의 기생무를 선보인 데 대해 현지 언론들은 “독특한 리듬과 정확한 춤 동작은 우아하면서도 힘이 넘쳤고, 짜릿함이 귀여움이 민첩함과 조화를 이뤘다”고 묘사했다.

샤이오궁전 공연 첫 무대는 2개의 ‘기생무’였다. “독특한 리듬과 정확한 춤 동작은 우아하면서도 힘이 넘쳤고, 짜릿함이 귀여움이 민첩함과 조화를 이뤘다”면서 구체적인 묘사를 하고 있다.

‘천하대장군’에 대해 이 신문은 ‘독창적인 환상 무언극’으로 소개했다. “무용가는 불꽃 색깔의 의상을 입었는데 여기서는 신기하고도 미학적인 효과가 배어 있었다. 옥피리의 반짝이면서 달콤한 선율과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곁들인 우수에 젖은 매력이 무용 작품과 조화를 이루곤 했다.”
최승희의 ‘천하대장군’. 1930년대 프랑스의 한 언론은 이 작품에 대해 ‘독창적인 환상 무언극’이라고 소개했다. 1939년 네덜란드 신문 ‘애본드포스트’는 “무용을 환상으로 바꾸어,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힘세고 똑똑한 사람으로 착각하는 한 장군의 놀라운 상상의 세계를 보여준다”고 평했다.

네덜란드 신문 ‘애본드포스트’는 1939년 4월 18일자에서 ‘천하대장군’ 작품을 ‘단연코 놀랄 만한 것’이었다면서 이런 감상평을 남겼다.

“무용을 환상으로 바꾸어,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힘세고 똑똑한 사람으로 착각하는 한 장군의 놀라운 상상의 세계를 보여준다.”

앞서 언급한 네덜란드 ‘레시덴터보드’는 최승희의 공연 작품을 ‘진정한 의미의 원래 한국무용’이라면서 전반적으로 호평을 아끼지 않고 있다.

“최승희의 무용은 관객들에게 신기한 주술을 던진다. 그녀의 작품들은 오래 감상한다고 지루해지는 것이 없다. 소품과 의상과 얼굴 표정 등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예술적 표현의 호소력은 대단히 커서 관객이 거기서 벗어나기란 불가능하다.”

네덜란드 ‘신로테르담통신’의 최승희 무용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는 경탄에 가깝다.

“최승희의 민속무가 기술적으로 완벽함을 보여주는 것은 대체로 3단계로 드러난다. 처음에는 느리지만, 이내 민첩해지는가 하면, 마침내 활발하고 생생하게 끝맺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마치 프레스코화의 이미지를 창조하는 것과 같다. 인물을 묘사하는 자신의 동작으로 마치 돌의 영혼을 일깨워서 살아나도록 불러내는 것과 같다.”

이 신문은 한걸음 더 나아가 “최승희야말로 위대한 무용가이자 위대한 인간임을 확인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차길진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차길진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