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7-02-25 19:06:25
기사수정 2017-03-05 15:34:59
“헌법재판소가 만약 탄핵을 인용한다면 헌재 재판관들도 다 빨갱이다. 빨갱이들에게 절대 승복하지 않는다.”(박모씨·64)
이른바 ‘태극기 집회’라 불리는 제 14차 탄핵기각 총궐기 국민대회가 열린 25일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말은 역시 빨갱이였다. 이들에겐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외치는 촛불집회 참가자도, 가방에 세월호를 뜻하는 노란색 표식을 달고 있는 젊은이도, 더불어 민주당 지지자까지, 모두가 빨갱이였다.
빨갱이는 반공이데올로기가 강했던 1960~80년대에 청장년층을 보낸, 현재는 노년층이 된 이들에게 비단 공산주의자만을 뜻하는 게 아닌 듯했다. 자신들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이들을 그저 빨갱이라 불렀다.
3차부터 14차까지 빠짐없이 태극기 집회에 참가했다는 정모(73)씨는 “촛불집회에 참가하는 젊은이들은 선동에 쉽게 휩쓸리는 빨갱이들이다. 그들이 6.25전쟁을 겪어봤나. 대체 뭘 안다고 저렇게들 설치는지 모르겠다”며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저렇게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외칠꺼면 차라리 북쪽으로 올라가서 살지들 그래”라고 촛불집회를 비판했다. 김모(57)씨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북한에다 퍼주니 핵이나 만들고 있지 않나.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에게 엄격한 태도를 보이며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 분이다. 지금의 사태도 최순실이 잘못이지 박근혜 대통령의 잘못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끌어내리려는 것들은 곧 빨갱이이자 종북이다”라고 말했다.
‘태극기 집회’ 참석자들이 집회시위 관리를 위해 출동한 애꿎은 의경들에게 시비를 거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 이들은 “평화적으로 집회하고 있는데 대체 여길 왜 지키는 거냐”, “저기 촛불집회나 가라. 우린 아무 문제없다”, “여길 지키는 것 보니 휴가 나가면 촛불집회 나갈 것 같다”며 비아냥거렸다.
세월호 표식을 달고 다니는 젊은이들 역시 곧 빨갱이였다. 덕수궁 대한문 근처 와플가게에서 와플을 기다리던 젊은 여성이 가방 지퍼에 세월호 표식을 달고 있자 우르르 몰려가서 “여기가 어디라고 저 노란 딱지를 달고 다니는 거야”, “저 노란 딱지 당장 떼지 못해. 요즘 젊은 것들이란 쯧쯧~”,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를 침몰시킨 것도 아닌데, 왜 자꾸 세월호 사건을 갖고 난리들 인거야”라며 원색적인 비난을 가했다.
근처에 볼일이 있어 왔다는 김모(32)씨는 “등 뒤로 꽂히는 원색적인 말들에 뒤돌아 대꾸했다가는 어떻게 할지 몰라서 그저 와플 가게만 쳐다보고 있었다. 어르신들이 대체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며 울상을 지어보였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