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한 현실, 더 나쁜 놈 응징… ‘사이다 해결’에 속이 뻥~

안방극장 사로잡은 ‘김과장’ 세계 최고 청렴 국가 ‘덴마크’로의 이민을 꿈꾸는 ‘삥땅’ 전문 회계사 김성룡 과장의 인기가 고공행진 중이다. 재무이사 등 회사 임원들과 사사건건 마찰을 빚고 위기에 처하지만 매번 상상도 못할 파격적인 방법으로 보란 듯이 해결해 낸다. 그 과정에서 시청자들은 통쾌함을 넘어 대리만족까지 느끼고 있다. KBS2 ‘김과장’에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된 것도 아니고, 한류스타 등 유명배우가 출연하지도 않았지만 수목 안방극장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비결이 여기에 있다.
‘삥땅’ 전문 회계사 김성룡 과장의 이야기를 다룬 KBS2 ‘김과장’이 고공행진 중이다. 매번 기발한 방법으로 회사 임원의 갑질에 대응하는 김 과장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다.
KBS 제공
◆‘나쁜 놈’이 ‘더 나쁜 놈’을 응징할 수밖에 없는 ‘나쁜 세상’

김성룡 과장(남궁민 분)은 온갖 비리를 동원해 불법 자금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일부를 자기의 몫으로 빼돌리는 일명 ‘삥땅’으로 유명한 회계전문가다. 불법을 밥 먹듯이 일삼는데도 정작 본인은 한국사회가 깨끗하지 않다며 세계에서 가장 청렴하다고 알려진 덴마크로의 이민을 꿈꾼다. 여기서 첫 번째 아이러니가 나온다.

목포에서 삥땅을 하던 김 과장은 서울로 올라가 대기업 TQ그룹의 본사 경리과장으로 취직한다. 큰물(?)에서 크게 삥땅해 덴마크 이민 자금 10억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는 박현도 회장(박영규 분), 서율 재무이사(준호 역) 등 ‘더 심한 악당’을 만나면서 분에 맞지 않는 정의로운 일을 하게 된다. 우연히 위험에 빠진 전임 경리과장의 부인을 구해 ‘의인’으로 불리게 되면서 박 회장 등과의 관계는 더욱 나빠진다. 두 번째 아이러니다.

이처럼 ‘김과장’에서는 나쁜 세상에 살고 있는 나쁜 놈이 더 나쁜 놈을 응징하는 아이러니의 연속이 발생한다. 하지만 이런 ‘아이러니’는 마치 우리들이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현실과 같다. 

◆대기업 갑질, 재벌 비리 등 나쁜 것들 투성이의 ‘김과장’과 ‘대한민국’

극중 배경이 되는 TQ그룹은 택배, 쇼핑 등 11개 계열사를 가진 대형유통기업으로, 시가 총액은 6조4000억원, 사원수는 2만3000명이다. 박 회장과 서 재무이사를 비롯해 조민영 상무이사, 고만근 재무관리본부장, 이강식 회계부장 등 TQ그룹을 이끌고 있는 임원들이 악역으로 등장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TQ그룹 회계를 조작하고 은폐한다. 또한 계열사인 TQ택배의 자금을 횡령하고, 이 과정에서 택배원들에게 일방적으로 불합리한 고용을 체결하며, 이에 반발한 노조의 시위를 용역깡패로 무마하려 한다.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기업의 횡포와 부정·부패, 부조리, 불합리가 ‘김과장’을 통해 재현되고 있다.

회장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임원 자리를 꿰차고 개인 비용까지 회사 자금으로 처리하려는 갑질과 직원을 단지 일꾼·소모품 정도로 여기는 사내 분위기 등도 다뤘다. 특히, 지난 15일 7화에서는 총무부 오 부장의 자살시도를 통해 이 같은 사회 문제를 노골적으로 지적했다. 오 부장은 22년 동안 회사를 위해 일했지만 사측은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그의 사직을 종용한다. 이에 오 부장은 자살을 시도한다.

그런 그에게 김 과장은 “부장님 죽는다고 이 회사 높은 새끼들이 알아 줄 것 같아요? 그냥 조화 하나 딸랑 보내고 끝이라고!”라며 “남의 돈 다 해먹고 죄책감 하나 못 느끼는 그런 새끼들도 아주 떵떵거리면서 잘 살고 있는데 부장님이 왜 요단강 건널라 그러는데! 거기 올라가서 뒤져야 될 건 부장님이 아니라 바로 그딴 새끼들이라고!”라며 일침을 던진다.

◆암울한 현실 속 비현실적 해결책으로 ‘대리만족’

‘김과장’은 암울한 현실 사회의 문제점, 고질병을 신랄하게 고발하면서도 만화에서나 볼 법한 비현실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고 있다.

불법을 일삼던 회계사가 한순간에 정의의 사도가 돼 대기업 회장 등 임원과 싸우거나 단지 사기를 잘 할 것 같아서 대기업 경리과장으로 채용되는 것이 다소 억지스럽다. 김 과장이 가는 곳곳마다 각종 문제가 발생하고 김 과장이 당연하다는 듯 쉽게 해결하는 것도 마치 히어로 영화를 보는 듯하다.

하지만 이런 점이 오히려 시청자들에게 ‘사이다’로 다가온다. 대통령 탄핵, 청년 실업 등으로 어두운 현실에서가 아닌 드라마에서나마 바라는 것들이 통쾌하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홍익대 문화예술경영대학원 고정민 교수는 “곧 끝날 것 같았던 대통령 탄핵이 계속되는 등 정치적으로 복잡하고 힘들고 암울한 현실이 계속되고 있다”며 “‘김과장’은 이런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도피처로, 시청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복진 기자 bo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