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제망신’ 홍기택 책임 끝까지 파헤쳐 단죄하라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이 이달 중순 슬며시 귀국해 그제 검찰에 출두했다. 지난해 6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를 사실상 그만두고 해외 도피를 하며 잠적한 지 8개월 만이다. 2013년 4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산업은행 회장을 지낸 그는 대우조선해양을 부실하게 관리·감독해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대우조선해양이 2015년 5월 회사 내 회계비리 정황을 파악해 3조원대 회사 손실을 공개했음에도 그해 10월 대우조선해양에 2조2000억원을 지원해 산업은행에 손실을 끼쳤다는 것이다. 당시 대우조선해양은 부채비율이 7000%를 넘을 정도로 부실이 극심했다.

그는 작년 6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대우조선해양 지원과 관련해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정부 방침을 알았고 그때는 아예 산업은행이 얼마, 수출입은행이 얼마 하는 것까지 딱 정해져서 왔다”고 주장했다. 산업은행은 들러리 역할만 했다는 식이다. 향후 검찰 수사에서 철저히 규명돼야 할 대목이다.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에 대한 홍 전 회장의 인지 여부와 서별관회의 역할 등이 밝혀져야 한다.

홍 전 회장이 탄핵 정국 와중에 검찰 조사에 응한 속셈이 뻔하다. 나라가 혼란한 틈을 타 은근슬쩍 넘어가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그는 지난해 변호사를 선임해 치밀하게 법적 대응을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에 미리 입국 사실을 알리고 조사받겠다는 의사를 표했다고 한다. 검찰은 대우조선해양에 공적 자금 투입 결정을 내린 과정을 낱낱이 파헤쳐 법에 따라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 당시 서별관회의 참석자들이 권력 실세여서 홍 전 회장 문제가 묻혔다는 소리도 나온다.

홍 전 회장은 한국 몫인 AIIB 부총재 자리를 잃은 책임도 져야 한다. 우리나라는 5년에 걸쳐 37억달러를 AIIB에 내기로 하고 부총재 다섯 자리 중 하나를 확보했다. 그러나 홍 전 회장이 정부 만류에도 AIIB에 돌연 휴직계를 내는 바람에 AIIB의 부총재 자리가 다른 나라에 넘어가고 말았다. 국익을 해치고 나라 망신까지 시킨 꼴이다. 그러고도 여태껏 사과 한 마디 없었다. 그는 박근혜정권의 ‘대표적 낙하산’으로 꼽힐 만큼 승승장구했다. 실력과 자질보다는 ‘박근혜 경제교사’ 등 관련설이 뒷배로 작용했다고 한다. 자질 부족 인사를 발탁한 잘못이 크다. 낙하산 폐해를 여실히 보여준 ‘홍기택 사례’는 다신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