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7-03-01 18:45:47
기사수정 2017-03-01 22:29:17
서울 도심 집회 안팎
“(촛불을 든) 한분 한분이 유관순 열사다.” VS “일제보다 참혹한 세력이 대통령을 탄핵했다.”
98주년 3·1절을 맞은 서울 도심에서는 두 개의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우리 민족의 독립과 단결의 상징인 태극기도 ‘노란 리본을 단 태극기’와 ‘성조기와 짝꿍인 태극기’로 나뉘어 비를 맞아야 했다. 1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여부를 놓고 서울 세종대로와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촛불집회’(탄핵 찬성)와 ‘태극기집회’(탄핵 반대)가 만들어 낸 풍경이다.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이 이날 광화문광장에서 주최한 18차 촛불집회에서는 ‘박근혜 퇴진·구속! 헌법재판소 탄핵 인용! 황교안 사퇴!’를 요구하는 함성이 터졌다. 오후 5시 시작된 집회에서 퇴진행동은 헌법재판소가 촛불 민심을 수용해 반드시 탄핵을 인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영준 퇴진행동 공동상황실장은 “박근혜는 최후변론에서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1000만 촛불이 있었기에 탄핵 인용을 앞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탄핵 반대단체를 향해 “숭고한 태극기를 부패한 정권을 위해 쓰는 것은 애국선열을 모독하는 일”이라고 쏘아붙였다. 3·1절을 맞아 촛불집회에도 태극기가 다수 등장했으나 주최 측의 당부에 따라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이 함께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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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기각” 1일 서울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들이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 기각을 요구하며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서상배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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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각” 1일 서울 세종대로사거리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들이 “탄핵 무효”를 외치며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서상배 선임기자 |
집회가 끝나고 이어진 행진은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 방면으로 청와대 남쪽 100 지점까지 진행됐다. 촛불집회에 4번째 참가한다는 김현숙(51·여)씨는 “비가 와서 날씨도 안 좋고, 태극기집회까지 근처에서 열려 여러모로 악조건이었는데 촛불 하나 더해야겠다는 심정으로 나왔다”며 “촛불집회 목소리를 제발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퇴진행동은 탄핵심판 선고 때까지 주말집회를 이어가고, 탄핵 기각 시 총파업과 농기계 시위, 동맹휴업 조직 등 강력한 항의 투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에 맞서 광화문광장 남쪽 끝 경찰 차벽을 넘어 세종대로사거리부터 서울광장과 숭례문 주변까지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드는 탄핵반대 집회 참가자가 가득했다. 주최 측인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는 ‘3·1절 선언문’에서 “일제보다 참혹한 불의로 무장한 세력이 단돈 1원도 받지 않은 대통령을 탄핵해 태극기를 들게 했다”며 “태극기를 수의 삼아 자신있게 잠들 수 있음과 최후의 승리가 있음을 선언한다”고 부르짖었다. 이날 오후 2시부터 시작된 태극기집회 현장은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참가자가 각기 준비한 태극기를 들고 오전부터 모여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그 전 집회가 친박근혜 성향의 보수단체와 주로 60대 이상 노년층의 집회로 평가받았다면 이날은 어린 자녀를 데리고 나온 부모나 젊은층도 자주 눈에 띄었다. 인천 부평에서 자녀를 데리고 온 김성은(47)씨는 “언론에서 본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생각을 많이 갖게 됐다. 아이들도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에 다 같이 나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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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인용” 98주년 3·1절인 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주최로 열린 박 대통령 퇴진 촉구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탄핵 인용’, ‘박근혜 구속’ 등의 피켓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재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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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집회 참가자들이 노란리본을 단 태극기를 흔들거나 ‘탄핵’, ‘박근혜 구속’이 적힌 피켓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재문 기자 |
참가자들은 오후 3시30분쯤부터 ‘헌재는 촛불에서 독립하라’, ‘무너지는 법치국가 태극기로 수호하자’라고 적힌 현수막과 ‘탄핵반대’ 피켓 등을 들고 처음으로 청와대 인근까지 행진했다. 청와대 주변에서는 “박 대통령 힘내라”, “탄핵은 무효” 등의 구호를 외쳤다.
하지만 일부 참가자가 “빨갱이”, “매국노” 등 과격한 표현을 사용하거나 행진 도중 촛불집회 측 피켓을 들고 있는 행인들에게 욕설을 쏟아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모(51)씨는 자신의 집에서 흉기를 이용해 왼손 새끼손가락을 자른 뒤 붕대를 감고 집회에 참가했다가 경찰에 목격돼 인근 병원으로 옮겨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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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의 탄핵 반대 집회와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 사이로 충돌을 막기 위해 경찰차벽이 세워진 가운데 보수단체 회원이 경찰차량위로 올라와 경찰의 제지를 받고 있다. 이재문기자 |
3·1절 의미가 퇴색할 정도로 우리 사회 내부가 분열된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시민도 적지 않았다. 최모(61·여)씨는 “젊은 세대와 노인 세대가 의견이 다르더라도 오늘 같은 날만은 하나였으면 한다”고 바랐다. 다른 한 시민은 “헌재에서 판결 나오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결과를 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집회가 각각 청와대로 행진을 하고, 근접한 거리에서 열려 충돌 우려가 컸지만 다행히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경찰은 이날 집회 현장에 경비병력 202개 중대(약 1만6000명)를 투입해 광화문광장 주변에 차벽을 설치하고, 양측 간 접촉을 철저하게 막았다. 집회 현장으로 가기 위한 통로는 광화문역 3개의 출구로 제한했고, 시민들은 경찰의 안내를 받거나 간단한 검문·검색을 거쳐야 했다. 이 때문에 곳곳에서 작은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창수·배민영·이창훈 기자
winteroc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