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7-03-03 01:02:56
기사수정 2017-04-11 14:58:22
팔다리 자르면 생존할 수 없듯 거두절미하면 사실 왜곡돼 / 자기 아는 것 고집하기보다 진실 앞에 겸허한 자세 보여야
대체 진실이 뭐길래. 그 하나에 짓눌려 그제 밤새 침대 위를 굴렀다. 아내가 카톡으로 보내준 유튜브 오디션 프로를 본 게 발단이었다. 그 아래 김평우 변호사의 78분짜리 동영상이 눈에 띄어 무심코 눌렀다.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단의 일원인 그가 헌법재판소 대통령 탄핵심판 16차 변론에서 발언한 내용이었다.
김 변호사는 변론에서 “헌재가 (공정한 심리를) 안 해주면 시가전이 생기고 아스팔트가 피로 덮일 것”이라고 소리친 것으로 언론에 보도됐다. 그는 “대통령파와 국회파가 갈려 내란 상태로 들어갈 수 있다. 영국 크롬웰 혁명에서 100만명 이상이 죽었다”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그의 변론은 군중을 선동하는 발언으로 지탄을 받았다. 나 역시 그런 인물쯤으로 여겼기에 그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았다. 그러나 변론 내용을 찬찬히 들어보니 애초 생각했던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변론의 한 대목을 옮겨본다.
“국회 탄핵소추 의결이 헌법, 법률, 적법절차 안 맞는다 맞는다, 이런 걸 (결정하는) 헌법전문 사법기관, 유일한 게 헌재다. 탄핵사건은 다른 법원 관리 못한다. 헌재만 전속관할이 있다고 헌법에 박혀 있다. 이 기관에서 이거 안 다투면 심리 안 하면 누가 심리하냐? 대법원에서 심리하냐? 관할권 없는데. 국민이 어떻게 결정할까. 만일에 국민이 결정하도록 맡겨 보세요. 촛불집회, 태극기집회, 정면충돌해서 우리 서울에 아스팔트길 우리나라 길들은 전부 피와 눈물로 덮여요. 헌법재판소가 판결을 안 해주기 때문에 국민들이 나가서 서로 싸워야 된다니, 그럼 뭐하려고 헌재가 있나요?”
발언의 맥락을 되짚어 보면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절차가 적법하게 이뤄졌는지 헌재가 결정을 내리지 않고 국민에게 맡긴다면 찬반 세력이 거리에서 충돌한다는 것이다. 크롬웰 혁명을 언급한 대목도 헌재가 없으면 국회파와 대통령파가 충돌하고, 그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 헌재가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헌재의 균형자적 역할에 방점이 찍혔을 뿐 언론에서 제기한 선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물론 김 변호사의 발언에는 부적절한 용어들이 등장한다. 그의 주장을 두둔하거나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동영상을 보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그날 불면의 밤을 보낸 것은 진실을 향한 온갖 번민들이 꼬리를 물었기 때문이다. 진실은 몸뚱이로만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사지를 절단하면 진실 역시 생명을 영위할 수 없다. 온전한 전체 모습이 아니면 자칫 ‘사이비 진실’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진실이라는 음식을 요리하기 위해선 좀 색다른 재료가 필요하다. 땀과 시간과 바른 생각이 있어야 한다. 어느 것 하나 잘못 첨가되면 진실의 순수한 맛을 잃어버린다. 진실을 만나기 어렵고 귀한 이유다.
철학자 플라톤은 영원 불멸한 존재로서 이데아를 주창했다. 우리가 접하는 현상의 세계는 이데아라는 원형의 모사품이라는 것이다. 꽃의 예를 들자면 이렇다. 우리 주위에 보고 만질 수 있는 수많은 꽃들이 있지만 꽃의 원형은 따로 존재한다는 얘기다. 어쩌면 진실이라는 것도 이와 비슷할는지 모른다. 진실의 원형에는 접근이 어렵고 우리가 보는 것은 1%, 3%, 10%의 불순물이 섞인 진실일 수 있다. 그것을 과연 진실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공자가 천하를 유랑하던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어려움을 당해 7일 동안 굶었다. 겨우 곡식을 얻어온 제자가 밥을 짓다 몰래 숟가락으로 떠먹는 것이었다. 공자가 그 광경을 보고 훈계했다. 제자의 대답은 이러했다. “밥을 짓다 솥뚜껑을 열었더니 그을음이 떨어졌습니다. 버리기가 아까워 그곳을 조금 떠먹었습니다.” 제자의 말을 들은 공자는 아차 싶었다. 그 후 설혹 자기 눈으로 봤다고 해서 모두 진실로 믿어선 안 된다고 제자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진실이 두렵다. 공자 같은 성인조차 자기 눈을 의심해야 할 정도라면 바른 눈을 갖지 못한 우리들이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내가 본 것을 무조건 진실로 고집해선 안 된다. 진실 앞에 모두가 겸허해야 한다.
배연국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