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체크] 헌법재판소 '6인룰'… 탄핵심판 마지막 변수

5대4의 경우 소수가 다수 이길 수 있는 독특한 구조 / 과반수를 확보하고도 결론에선 패배한 사례 '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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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다가오면서 재판관 8명의 의견이 전원일치를 이룰지, 아니면 엇갈릴지, 만일 갈린다면 몇 대 몇의 스코어를 기록할지에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다.

3일 헌재에 따르면 법률의 위헌 결정, 그리고 탄핵과 위헌정당해산 결정에는 재판관 6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재판관 전체 정원이 9명이니 3분의2, 즉 66.7% 이상의 찬성률을 얻어야 비로소 위헌·탄핵·정당해산 결정이 가능한 것이다. 이처럼 결정에 필요한 정족수를 단순 과반수(5명)보다 높게 정한 것은 위헌·탄핵·정당해산 결정을 그만큼 어렵게 만듦으로써 법적 안정성을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한철 전 헌법재판소장(가운데) 퇴임 전 9인 체제의 헌재 재판부 모습. 재판관이 1명 줄었지만 '6명 이상 찬성' 규정은 그대로 적용된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문제는 재판관 전체 정원이 줄어들어도 ‘6인 룰’은 그대로 적용된다는 점이다. 박한철 전 헌재소장이 지난 1월31일 퇴임한 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이끄는 ‘8인 체제’ 헌재도 박 대통령 탄핵 결정을 하려면 똑같이 6명의 찬성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4분의3, 즉 75% 이상의 찬성률을 얻어야만 탄핵 인용이 가능한 만큼 조건이 더욱 까다로워진 셈이다.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청사 전경. 헌재는 '6인 이상 찬성' 규정 때문에 위헌이 5표, 합헌이 4표인 상황에서 위헌 결정을 내리지 못한 사례가 허다하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헌재 역사를 살펴보면 위헌을 주장한 재판관이 5명으로 합헌 측 4명보다 많아 명백히 과반수인데도 정족수(6명)에 한 명 모자라 위헌 결정을 못 내린 사례가 허다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1996년 2월 이른바 5·18 특별법에 대한 합헌 결정이다.

당시 김영삼정부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진압한 신군부 세력 처벌을 위해 5·18 특별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이는 곧 헌법상 형벌불소급 원칙 침해라는 논란이 불거졌고 공은 헌재로 넘어갔다. 헌재는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사안인데 특별법을 만들어 처벌하려는 것은 명백한 소급입법”이라며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이 5명으로 과반수였다. 하지만 정족수(6명)에 한 명 부족해 결론은 합헌으로 났다.

2008년 10월 간통죄 사건도 비슷하다. 재판관 5명이 “간통죄 처벌은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라며 위헌 의견을 냈으나 정족수(6명)에 한 명 모자라 가까스로 합헌 결정이 났다. 물론 이때부터 ‘간통죄는 곧 없어질 것’이란 사회적 분위기가 확산했다. 헌재는 7년 뒤인 2015년 2월 재판관 7(위헌) 대 2(합헌) 의견으로 간통죄를 폐지했다.

2010년 7월 한의사 자격이 없는 일반인의 침·뜸 시술을 금지한 의료법 조항에 대한 헌재의 합헌 결정은 격한 사회적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재판관 5명이 “일반인도 침·뜸 시술을 할 수 있다”며 위헌 의견을 냈지만 역시 정족수(6명)에 한 명 부족해 합헌 결정이 났기 때문이다. 이에 한의사 자격이 없지만 침·뜸 시술을 하길 원하는 이들은 “9명의 재판관 중 5명이 위헌 결정을 내렸으니 사실상 위헌이고 사실상 우리의 승리”라는 주장을 폈다.

탄핵 찬반을 둘러싸고 대립과 갈등이 심각한 만큼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만장일치 결정으로 국론분열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번 박 대통령 탄핵심판도 재판관 8명이 5(인용) 대 3(기각 또는 각하)으로 갈리면 비록 탄핵 찬성이 과반수이지만 결론은 기각 또는 각하로 날 수 있다. 이 경우 ‘촛불민심’으로 대변되는 박 대통령 비판자들이 불복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상당수 법조인들이 “분란 소지를 아예 없애려면 전원일치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법학계에선 오래 전부터 “9명 중 6명 이상의 찬성을 요구한 헌재 정족수는 지나치게 까다로운 요건”이라며 단순 과반수(5명)로 조정할 필요성을 제기해왔다. 그러나 이는 헌법에 명시된 조항인 만큼 ‘4표가 5표를 이기는’ 상황 발생을 막으려면 개헌이 꼭 필요한 게 현실이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