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7-03-03 11:45:21
기사수정 2017-03-03 14:58:57
5대4의 경우 소수가 다수 이길 수 있는 독특한 구조 / 과반수를 확보하고도 결론에선 패배한 사례 '허다'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다가오면서 재판관 8명의 의견이 전원일치를 이룰지, 아니면 엇갈릴지, 만일 갈린다면 몇 대 몇의 스코어를 기록할지에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다.
3일 헌재에 따르면 법률의 위헌 결정, 그리고 탄핵과 위헌정당해산 결정에는 재판관 6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재판관 전체 정원이 9명이니 3분의2, 즉 66.7% 이상의 찬성률을 얻어야 비로소 위헌·탄핵·정당해산 결정이 가능한 것이다. 이처럼 결정에 필요한 정족수를 단순 과반수(5명)보다 높게 정한 것은 위헌·탄핵·정당해산 결정을 그만큼 어렵게 만듦으로써 법적 안정성을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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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철 전 헌법재판소장(가운데) 퇴임 전 9인 체제의 헌재 재판부 모습. 재판관이 1명 줄었지만 '6명 이상 찬성' 규정은 그대로 적용된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문제는 재판관 전체 정원이 줄어들어도 ‘6인 룰’은 그대로 적용된다는 점이다. 박한철 전 헌재소장이 지난 1월31일 퇴임한 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이끄는 ‘8인 체제’ 헌재도 박 대통령 탄핵 결정을 하려면 똑같이 6명의 찬성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4분의3, 즉 75% 이상의 찬성률을 얻어야만 탄핵 인용이 가능한 만큼 조건이 더욱 까다로워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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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청사 전경. 헌재는 '6인 이상 찬성' 규정 때문에 위헌이 5표, 합헌이 4표인 상황에서 위헌 결정을 내리지 못한 사례가 허다하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헌재 역사를 살펴보면 위헌을 주장한 재판관이 5명으로 합헌 측 4명보다 많아 명백히 과반수인데도 정족수(6명)에 한 명 모자라 위헌 결정을 못 내린 사례가 허다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1996년 2월 이른바 5·18 특별법에 대한 합헌 결정이다.
당시 김영삼정부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진압한 신군부 세력 처벌을 위해 5·18 특별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이는 곧 헌법상 형벌불소급 원칙 침해라는 논란이 불거졌고 공은 헌재로 넘어갔다. 헌재는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사안인데 특별법을 만들어 처벌하려는 것은 명백한 소급입법”이라며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이 5명으로 과반수였다. 하지만 정족수(6명)에 한 명 부족해 결론은 합헌으로 났다.
2008년 10월 간통죄 사건도 비슷하다. 재판관 5명이 “간통죄 처벌은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라며 위헌 의견을 냈으나 정족수(6명)에 한 명 모자라 가까스로 합헌 결정이 났다. 물론 이때부터 ‘간통죄는 곧 없어질 것’이란 사회적 분위기가 확산했다. 헌재는 7년 뒤인 2015년 2월 재판관 7(위헌) 대 2(합헌) 의견으로 간통죄를 폐지했다.
2010년 7월 한의사 자격이 없는 일반인의 침·뜸 시술을 금지한 의료법 조항에 대한 헌재의 합헌 결정은 격한 사회적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재판관 5명이 “일반인도 침·뜸 시술을 할 수 있다”며 위헌 의견을 냈지만 역시 정족수(6명)에 한 명 부족해 합헌 결정이 났기 때문이다. 이에 한의사 자격이 없지만 침·뜸 시술을 하길 원하는 이들은 “9명의 재판관 중 5명이 위헌 결정을 내렸으니 사실상 위헌이고 사실상 우리의 승리”라는 주장을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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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찬반을 둘러싸고 대립과 갈등이 심각한 만큼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만장일치 결정으로 국론분열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이번 박 대통령 탄핵심판도 재판관 8명이 5(인용) 대 3(기각 또는 각하)으로 갈리면 비록 탄핵 찬성이 과반수이지만 결론은 기각 또는 각하로 날 수 있다. 이 경우 ‘촛불민심’으로 대변되는 박 대통령 비판자들이 불복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상당수 법조인들이 “분란 소지를 아예 없애려면 전원일치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법학계에선 오래 전부터 “9명 중 6명 이상의 찬성을 요구한 헌재 정족수는 지나치게 까다로운 요건”이라며 단순 과반수(5명)로 조정할 필요성을 제기해왔다. 그러나 이는 헌법에 명시된 조항인 만큼 ‘4표가 5표를 이기는’ 상황 발생을 막으려면 개헌이 꼭 필요한 게 현실이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