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플러스] '태극기 vs 촛불'… 우리 가족은 전쟁 중

‘탄핵 찬반’을 둘러싼 갈등…‘가족 사이까지 가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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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주부인 강은선(63·여)씨는 자녀들이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면 TV채널을 돌린다. 탄핵에 대한 뉴스만 보면 큰딸과 남편이 탄핵 찬반을 둘러싸고 논쟁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 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주최로 19차 범국민 행동의 날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이재문기자
얼마 전에도 부녀지간에 사달이 난 적이 있다. 뉴스를 보던 큰 딸이 “대통령이 아무런 권한이 없는 최순실하고 국정을 논의하고 그 뜻대로 정책을 결정한 것이 말이 되느냐”며 탄핵 인용을 주장했다. 옆에서 이를 듣고 있던 남편은 “그래도 대통령이 뇌물 한 푼 받았냐”며 “언론에서 성형수술 의혹까지 말하는 것은 나라 망신”이라고 언성을 높였다. 언성을 높이고 얼굴을 붉힌 남편과 딸은 한동안 씩씩거렸다. 막내딸과 함께 이들을 말리느라 애를 먹었다는 강씨는 “대통령의 잘못이 아예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다만 무조건 대통령을 끌어내리려는 야당의 입장에 동의하는 딸들과 매번 의견이 충돌하다보니 정치 이야기를 피하려 한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선고가 임박하면서 탄핵을 둘러싼 우리사회의 갈등이 가족 안에서도 펼쳐지고 있다. 4일 경북 예천에서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가 개최한 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상경한 최용열(70)씨는 “두 아들과 대학생인 손주들이 모두 민주당을 지지하는데 촛불집회에 다녀와서 정치 이야기를 하면 속만 시끄럽다”며 “주변에 자식들하고 정치 이야기하다가 싸우고 연락 안 하는 동네 사람들이 꽤 있다”고 말했다. 최씨는 “밖에서 하는 싸움을 굳이 집에서 이야기 해서 서로 얼굴 붉힐 필요는 없지 않느냐”며 “그런다고 해결 될 문제도 아닌데… 이건 서로 싸움밖에 안 된다”며 정치 이야기를 피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윤상현 자유한국당 의원이 4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문 광장에서 열린 `16차 태극기 집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지난달 18일 탄기국 집회에 참가한 소성우(54)씨는 “올해 85세인 아버지는 시청에, 대학생인 두 아들은 광화문에 갔다”며 “아들들에게 ‘촛불이 틀렸고 태극기가 옳다’고 직접 말은 못하지만 일단은 대한민국이 있어야 내 새끼, 내 가족이 있지 않겠느냐”며 자식들이 생각을 바꿔주길 바랐다.

4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문 광장에서 열린 `16차 태극기 집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이 현수막에 인쇄되어 있다.
하상윤 기자
어른들의 일방적인 ‘태극기’ 강요로 자녀들이 반발해 서로 대화를 피하는 경우도 있다. 손모(27)씨는 “지난 설날에 큰아버지로부터 대통령 탄핵의 부당한 이유를 밥 먹을 때마다 들었다”며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이시자 변호사인 큰아버지가 하는 말을 계속 들을 수밖에 없어 정말 괴로웠다”고 답했다. 이모(29·여)씨는 “대통령을 지지하는 할머니가 뉴스를 볼 때마다 ‘촛불은 빨갱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신다”며 “괜히 거기에 토를 달았다간 더 시끄러워지기 때문에 가만히 있는다”고 말했다. 이씨는 “어른들의 일방적인 주장에 침묵이 속편하다”고 덧붙였다.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통령 탄핵에 대한 반대여론은 최근 50대 이상에서 다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탄핵 소추안이 통과된 지난해 12월9일 여론조사에서는 50대 중 17%가, 60대 이상 응답자 중 33%가 탄핵에 반대했지만, 지난 3일 발표된 자료에서는 50대 중 28%, 60대 이상에서는 39%가 탄핵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대통령에게 실망했던 5060세대 일부가 대통령 동정여론에 힘입어 탄핵 반대로 돌아서고 있는 모양새다. 반면 탄핵에 찬성한다는 2030세대의 비율은 90%를 넘는다.

이창훈 기자 corazo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