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7-03-08 19:03:49
기사수정 2017-03-08 21:22:21
선고 앞두고 과도한 비난 자제 목소리/김평우 “헌재는 불임재판소” 비아냥 / 친박단체, 朴특검 자택앞서 화형식 / ‘朴특검 아내 충격에 혼절’ 보도까지 / 탄핵찬성측 “대통령 처형해야” 주장/‘선고 후폭풍’ 예고하며 재판부 압박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임박한 가운데 극단적인 언사를 동원한 외부의 ‘헌재 흔들기’가 도를 넘고 있다. 특히 박 대통령 대리인단과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 등 박 대통령 지지세력의 헌재에 대한 비방과 위협, 심판결과 불복 움직임 등 압박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박 대통령 측의 이런 행태에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대통령 대리인단 김평우(72·사법시험 8회) 변호사는 8일 오전 11시쯤 서울 종로구 재동 헌재 앞에서 ‘탄핵 기각’을 요구하며 단식 중인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탄기국)’의 농성 현장을 찾아 “헌재는 자멸하지 말라”며 재판부를 맹비난했다. 김 변호사가 조원룡(56·사법연수원 38기) 변호사와 함께 나타나자 태극기를 흔들며 ‘탄핵 각하’를 외치던 시민들이 한꺼번에 몰려 헌재 주변이 혼잡을 빚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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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농성 중 쓰러진 탄기국 공동대표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 공동대표인 권영해 전 국가안전기획부장이 8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청사 앞에서 탄핵에 반대하는 단식농성을 하던 중 쓰러져 119 구급차로 옮겨지고 있다. 연합뉴스 |
김 변호사는 “9인 재판부가 될 때까지 탄핵심판 결정을 미뤄야 한다”며 “만일 8인의 재판관이 선고하더라도 재판권 없는 재판부의 결정이므로 무효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수학적 법치주의’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현재 재판관 ‘8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헌재를 대놓고 비판했다. 김 변호사는 “헌법이 9인 재판부만이 헌법 분쟁을 결정할 수 있다고 규정한 것은 삼권분립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며 “현 상태의 재판부는 아무 평결도 내릴 수 없는 ‘불임 재판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앞서 지난 2일 주요 일간지에 ‘제2의 자유·민주·법치 대한민국 건국을 선언한다’는 제목의 광고를 내는 등 변론절차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심판정 밖에서 끊임없이 헌재를 비판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대리인단에 합류하기 전인 지난 2월9일 원로법조인 9명과 함께 낸 신문광고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4차례에 걸쳐 탄핵 기각을 촉구하는 내용의 신문광고를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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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엄한 경계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 선고가 임박한 8일 서울 종로구 헌재 청사 정문 앞에서 경찰이 삼엄한 경계를 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
대통령 측 손범규(51· 〃28기)변호사 역시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통령의 탄핵심판은 잘못됐다’는 취지의 글을 게시했다. 손 변호사는 “30년 전 지금의 헌법이 제정될 때 왜 대통령을 상대로 강력한 탄핵제도를 마련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며 “당시의 헌법제정 주체가 여소야대 국면을 이용해 정권탈취 목적의, 쿠데타적 인민재판을 하라고 만든 것은 결코 아닐 것”이라고 주장했다.
헌재뿐 아니라 최근 활동을 종료하고 박 대통령이 국정농단의 공범이라는 내용의 수사결과를 발표한 박영수 특별검사팀도 탄핵반대 진영으로부터 십자포화를 맞고 있다. 대통령 측은 지난 6일 특검의 수사결과 발표 직후부터 “특검의 수사 결과는 편파적”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김 변호사와 조 변호사 등은 기자회견을 통해 “박영수 특검은 태생적으로 위헌적인 수사권력이었다”고 쏘아붙였다. 이들은 특검이 활동한 기간을 ‘검찰 공포시대’로 규정하며 “특검은 수사 과정에서 수많은 인권침해를 자행한 전대미문의 검찰 공포 시대를 연출했다”고 험악한 말을 쏟아냈다. 친박(친박근혜) 성향의 보수단체 관계자 등은 박 특검 자택 앞에 몰려가 야구 방망이를 든 채 시위를 하고 화형식을 열기도 했다. 급기야 이날 박 특검 부인이 이들의 지나친 위협에 충격을 받아 혼절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정광용 박사모 회장이 카페 게시판에 “살만큼 살았다”며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글을 올리는 등 탄핵반대 진영은 얼마 전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집 주소와 단골미장원까지 공개해 ‘테러를 조장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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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선고일 발표가 임박한 8일 오후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친박 단체 회원들이 탄핵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
대통령 측의 이 같은 행보는 변론기일 종료 후 헌재 탄핵심판 선고가 임박하면서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헌재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해 선고기일을 최대한 늦추는 동시에 탄핵 인용 결정이 나왔을 경우 걷잡을 수 없는 후폭풍이 닥칠 것을 예고하며 헌재를 압박하려는 심산으로 풀이된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통령 대리인단의 행태는 그저 개인의 일탈로 보기 힘든 정도가 됐다”며 “법정 밖의 장소에서 헌재를 직접적으로 공격하고, 대중을 선동하고 있는 행동은 법률전문가의 기본 윤리를 잊은 행태”라고 지적했다. 이어 “헌재 역시 탄핵심판에 따른 과도한 비판과 압박에 단호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들뿐 아니라 탄핵 찬성 진영에서도 자신들의 바람과 맞지 않은 헌재 결정이 나올 경우 승복하지 않겠다며 과격한 구호가 난무하고 있다. 지난 주말 촛불집회에서는 박 대통령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처형하라’는 구호와 함께 단두대가 등장하기도 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이날 “헌재 판결을 앞두고 이렇게 극단적인 언행이 오가는 일이 우리 사회에 있어선 안 된다”고 양측의 자제를 당부했다.
김민순 기자 soo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