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권형 권력구조 개헌 촉구한 안창호 재판관의 보충의견 주목

“정경유착 등 정치적 폐습과 이전투구의 소모적 정쟁을 조장해 온 제왕적 대통령제는 협치와 투명하고 공정한 권력행사를 가능하게 하는 권력공유형 분권제로 전환하는 권력구조의 개혁이 필요하다.”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만장일치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인용한 10일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선고내용 외에 주목을 받은 것은 안창호(69·사법연수원 14기) 재판관의 ‘보충 의견’이다. 검찰 ‘공안통’ 출신으로 2012년 9월 당시 새누리당의 추천을 받은 안 재판관은 1987년 개헌을 통해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돼 대통령 ‘권력형성’의 민주적 정당성이 획기적으로 변한 것과 달리 과거 권위주의적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대통령 ‘권력행사’의 민주적 정당성 측면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며 분권형 권력구조 개헌을 촉구해 눈길을 끌었다. 이하 안 재판관의 ‘보충의견’ 전무.

○ 그 동안 우리 헌법이 채택한 대통령제는 대통령에게 정치권력을 집중시켰음에도 그 권력에 대한 견제장치가 미흡한 제왕적 대통령제로 평가된다.

○ 1987년 대통령직선제 헌법개정으로 대통령‘권력형성’의 민주적 정당성 측면에서는 획기적인 변화가 있었지만, 대통령‘권력행사’의 민주적 정당성 측면에서는 과거 권위주의적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행 헌법의 권력구조는 피청구인의 리더십 문제와 결합하여‘비선조직의 국정개입, 대통령의 권한남용, 재벌기업과의 정경유착’과 같은 정치적 폐습을 가능하게 하였다.

○ 현행 헌법의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워터게이트사건이 문제된 미국 대통령보다 집중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1987년 제9차 헌법개정 때보다 국가경제의 규모가 십여 배 확장되고 사회적 갈등구조가 다층적으로 심화되고 있는 현실에서는, 국가의 원수이자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의 업무는 양적으로 증가되었을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 전문화·다양화·복잡화 되었다. 대통령 권력은 실질적으로 확대되었고,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지 못한 비선조직은 강력한 대통령 권력에 기대어 활동공간을 넓힐 수 있었다.

○ 비선조직의 국정개입은 정책결정의 투명성·공정성 제고, 국민의 예측·통제가능성 확보, 그리고 권력행사에 따른 책임의 담보라는 측면에서 취약하다. 특히 비선조직의‘계속적인’국정개입은 국민과 국가기관 사이의‘민주적 정당성의 연결고리’를 단절하고,‘정치과정의 투명성’과‘정치과정에서 국민의 참여 가능성’을 차단함으로써 대의민주제 원리를 형해화할 수 있다. 대통령 권력을 과도하게 집중시킨 현행 헌법의 권력구조는 최서원의 국정개입을 조장함으로써 권력행사의 민주적 정당성과 절차적 투명성 확보에 심각한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

○ 제왕적 대통령의 지시나 말 한마디는 국가기관의 인적 구성이나 국가정책의 결정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대통령의 리더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국무총리를 비롯한 고위 공직자들은 대통령의 의사결정과 지시에 복종할 뿐, 대통령의 뜻과 다른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기 어렵다. 더욱이 현행 헌법상 대통령 권력의 과도한 집중은 아직 청산되지 않은 하향식 의사결정문화와 정의적(情意的) 연고주의와 결합하여 대통령의 자의적 권력행사의 문제점을 심각하게 할 수 있다.

○ 우리나라는 선거에서 1표라도 더 얻으면 제왕적 정치권력을 획득하고 그렇지 못하면 권력으로부터 소외되는 승자독식 다수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 사회의 중요한 가치와 자원은 정치권력을 중심으로 편성되고, 정치권은 그 권력 획득을 위해 극한 대립과 투쟁으로 분열되어 있다. 정치세력간의 이전투구는 이념대립과 지역주의를 부추기고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 결과 국가기관의 인적 구성이나 국가정책의 결정이 투명한 절차를 통해 공정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사적·당파적 이익에 따라 자의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 대통령의 권한남용은 법치국가의 이념을 훼손하고,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으며, 직업공무원제도의 본질적인 내용을 훼손할 수 있다. 특히 대통령의 권한남용이 사익추구를 이유로 할 경우에는 국가공동체가 지향하는 공동선(共同善)과 공통가치(共通價値)를 훼손할 수 있다.

○ 정치권력의 재벌기업과의 정경유착은 재벌기업에게는 특권적 지위를 부여하는 반면, 다른 경제주체의 자발성과 창의성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대통령 권력의 과도한 집중은 정경유착의 원인이 되어 시장경제질서의 핵심가치인 개인과 기업의 재산권·경제적 자유를 침해하고 경제적 정의와 사회적 공정성 실현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 현행 헌법의 권력구조 아래에서 계속되고 있는‘비선조직의 국정개입, 대통령의 권한남용, 재벌기업과의 정경유착’은 제왕적 대통령제가 낳은 정치적 폐습이다. 이러한 정치적 폐습은 주요한 헌법가치인 민주적 정당성과 절차적 투명성, 사회적 공정성과 경제적 정의의 실현을 방해하고 있다.

○ 정치권력은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멀어지는 집권화(集權化) 경향을 띠고, 집권화는 절대주의를 지향하며, 절대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 더욱이 전문적이고 복잡다기한 현대 국가의 방대한 정책과제를 대통령 개인의 정치적 역량에 맡기는 것은 오히려 비효율을 초래할 수 있다.

○ 우리나라가 시대적 과제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권력구조가 타협과 숙의(熟議)를 중시하고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투명한 절차와 소통을 통해 민주적으로 조율하여 공정한 권력행사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투명하고 공정한 권력행사는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사회적 신뢰와 국민안전을 제고하여 사회통합과 국가발전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이사야 32장 16절-17절 참조). 따라서 정경유착 등 정치적 폐습과 이전투구의 소모적 정쟁을 조장해 온 제왕적 대통령제는 협치와 투명하고 공정한 권력행사를 가능하게 하는 권력공유형 분권제로 전환하는 권력구조의 개혁이 필요하다.

○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에게 권한을 집중시킨 우리 헌법의 역사, 국민의 개별 국가기관에 대한 신뢰도, 남북분단에 따른 안보현실, 정부형태에 대한 국민의 법 감정 등을 고려할 때, 이원집정부제, 의원내각제 또는 책임총리제의 실질화 등이 국민의 선택에 따라 현행 헌법의 대통령제에 대한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

○ 과도하게 집중된 대통령 권력을 분산하는 방법은 정부형태의 변경과 함께, 중앙집권적인 권력을 지방으로 대폭 이양하여 주민근거리(住民近距離)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의 조화로운 해결을 위해서는 정당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비례대표 국회의원후보자의 선정과정에서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는 가운데 비례대표제를 확대해야 한다(헌재 2016. 5. 26. 2012헌마347 보충의견).

○ 과도하게 집중된 대통령 권력을 분권하는 과정에서 국회나 지방자치기관에 분산된 권력은 국민소환제·국민발안제·국민투표제 등 직접민주제적 요소의 강화를 통해 통제되는 방안이 적극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 권력구조의 개혁은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가 충실히 반영되도록 설계된 국민참여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는 정치세력 사이의 권력투쟁이나 담합의 장으로 전락하지 않고 이성적 대화와 숙의가 이루어지고 다수 국민의 의사가 수렴되는 민주적 공론화과정이 되어야 한다.

○ 대통령의 파면을 정당화 할 정도의 중대한 법 위반 행위’의 여부는 확정적·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 사건에서‘대통령의 법 위반 행위’의 경위와 내용, 침해되는 헌법질서의 의미와 내용뿐만 아니라, 탄핵심판의 시대적 상황, 지향하는 미래의 헌법적 가치와 질서, 민주주의의 역사와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환경, 헌법수호에 대한 국민의 법 감정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 결정된다. 헌법상 평등은 불법의 평등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 대통령의 법 위반 행위가 증거에 의해 인정되고 그 법 위반 행위가 위와 같은 점이 고려되어‘대통령의 파면을 정당화 할 정도의 중대한 법 위반 행위’로 인정된 이 사건 심판에서 과거 정권에서의 법 위반 행위와 비교하여 이를 기각하여야 한다는 주장은 더 이상 의미 있는 주장이 아니다.

○ 대통령은 국민 모두에 대한‘법치와 준법의 상징적 존재’인 것이다. 이에 따라 대통령은 헌법을 수호하고 실현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뿐만 아니라, 법을 준수하여 현행법에 반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되며, 나아가 입법자의 객관적 의사를 실현하기 위한 모든 행위를 해야 한다(헌재 2004. 5. 14. 2004헌나1 참조). 대통령의 법 위반 행위는 일반국민의 위법행위보다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크다고 할 것이므로 엄중하게 대처해야 한다.

○ 우리나라에서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2015년 3월 제정되어 2016년 9월 시행되었다. 이 법률은 공직사회의 부패구조를 청산하여 공직자의 공정한 직무수행을 보장하고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신뢰의 확보를 입법목적으로 한다. 공정하고 청렴한 사회를 구현하려는 국민적 열망에 비추어 보더라도 대통령의 법 위반 행위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대처하지 않을 수 없다.

○ 우리와 우리 자손이 살아가야 할 대한민국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함으로써, 국민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하며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나라이다. 그런데 이 사건 심판청구를 기각한다면, 앞으로 대통령이 이 사건과 유사한 방법으로 헌법과 법률을 위반해도 파면의 결정을 할 수 없게 된다. 그 결과 정경유착 등 정치적 폐습은 확대·고착될 우려가 있다. 이는 현재의 헌법질서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것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우리 헌법이 지향하는 이념적 가치와도 충돌한다.

○ 이 사건 심판절차의 전 과정에서 대통령의 직무수행 단절로 인한 국정공백은 중대하고 국론분열로 인한 국가적 손실은 엄중하다. 이러한 난국을 극복하고 국민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대통령 개인에 대한 탄핵심판을 넘어 비선조직의 국정개입, 대통령의 권한남용, 재벌기업과의 정경유착과 같은 정치적 폐습을 청산하고, 정치적 폐습을 조장한 권력구조를 개혁하기 위한 반성과 성찰이 있어야 한다.

○ 제왕적 대통령제를 규정한 현행 헌법의 권력구조는 피청구인의 법 위반 행위를 정당화하는 구실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대통령 권력의 과도한 집중이 피청구인의 법 위반 행위를 부추긴 요인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더욱이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나타난 시대정신은 통치보다는 협치, 집권(集權)보다는 분권, 투명하고 공정한 권력행사로 나아갈 것을 명령하고 있다.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아모스 5장 24절).”성경말씀이다. 불법과 불의를 버리고 바르고 정의로운 것을 실천하라는 말씀이다.

○ 이 사건 탄핵심판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고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문제이다. 그리고 이 사건 탄핵심판은 단순히 대통령의 과거 행위의 위법과 파면 여부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헌법적 가치와 질서의 규범적 표준을 설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 피청구인에 대한 파면결정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기반으로 한 헌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것이며, 우리와 우리 자손이 살아가야 할 대한민국에서 정의를 바로 세우고 비선조직의 국정개입, 대통령의 권한남용, 정경유착과 같은 정치적 폐습을 청산하기 위한 것이다.

김민순 기자 soo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