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사흘 전 ‘역사의 법정’서 최후 판결 내린 이정미

13일 재판관 6년 임기 끝내 / “많은 번민과 고뇌의 시간 보내” / 선고 앞서 92일간의 소회 언급 / 박한철 前 소장 ‘바통’ 이어받아 / 38일간 단호하고 신속하게 심리 / 누리꾼 “심판 진력 존경심 느껴”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을 공정하고 신속하게 해결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왔습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국민들께서도 많은 번민과 고뇌의 시간을 보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정미(55)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10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에 앞서 이같이 운을 뗐다. 지난해 12월9일 국회 탄핵소추 이후 그 누구보다 바쁘게 보낸 92일에 대한 소회였다.


선고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10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휴일을 제외하곤 거의 매일 평의를 열어 탄핵심판 사건을 논의했다”고 밝힌 이 권한대행은 3차례 준비기일, 17차례 변론, 4만8000쪽 분량의 증거 조사, 종이상자 40개 분량의 탄원서 회람 등 그동안 거친 절차를 죽 나열했다. 이어 “오늘의 선고로 국론분열과 혼란이 종식되기를 바란다”며 선고를 시작했다.

이 권한대행은 지난 1월31일 박한철 전 헌재소장이 임기만료로 물러난 뒤 바통을 넘겨받아 38일간 탄핵심판 심리를 이끌었다.

처음엔 비교적 조용하게 시작한 탄핵심판 변론은 2월 들어 박 전 대통령 대리인단의 서석구·김평우 변호사 등이 돌출행동을 하며 차츰 소란스러워졌다. 서 변호사는 심판정에서 태극기를 흔들었고 김 변호사는 “탄핵 사유는 섞어찌개” 등 막말을 내뱉었다.

이 권한대행은 박 대통령 대리인단이 소송 지연 의도가 명백한 무더기 증인 신청에 주심인 강일원 재판관을 “국회 측 수석대리인”으로 지목한 기피 신청까지 꺼내들자 재판장으로서 강력한 소송지휘권을 행사했다. 불필요한 증인 신청은 대부분 기각했고 재판관 기피 신청도 10여분 만에 각하해 버렸다. 심판정에서 소란을 피운 방청객에겐 즉시 퇴정 조치를 내렸다.

그러면서 변론기일 때마다 국회 소추위원단과 박 전 대통령에 “재판의 공정성과 신뢰성에 해를 입힐 언행을 삼가라”고 거듭 경고했다. 선고 당일까지도 심판정에서만 입을 열었을 뿐 심판정 밖 취재진의 질문에는 한마디 대답도 하지 않았다.

‘헤어 롤’ 못 풀고 출근 10일 이른 아침에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선고에만 집중하느라 미처 깜박한 듯 머리에 미용도구(헤어 롤)를 꽂은 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오전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 선고를 앞두고 헌재로 출근하면서 과도한 중압감 탓인지 출근 전 머리를 다듬을 때 붙인 분홍색 헤어롤 2개를 떼지 않은 채 그냥 관용차에서 내리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오는 13일 6년 임기가 끝나는 그를 두고 누리꾼들은 “퇴임식 사흘 전까지도 심판에만 진력한 모습에 존경심을 느낀다” 등 찬사를 보냈다.

김건호 기자 scoop3126@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