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개입 은폐·부인' 헌법수호 의지 결여로 판단

헌재, 탄핵심판 결정문 살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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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 사안을 비선실세 최순실(61·구속기소)의 국정농단, 세월호 7시간, 언론 탄압, 공무원 임면권 남용의 4가지로 나눠 판단했다. 그 후엔 사안마다 사실관계를 확정한 뒤 거기에 박 전 대통령이 어느 만큼 개입했는지, 헌법 혹은 법률 위반에 해당하는지, 해당한다면 파면에 이를 만큼 중대한 일인지를 따져들어가는 논리구조를 취했다. 헌재는 가능하면 간결한 논리로, 사실관계는 최대한 보수적으로 판단했다. 사실을 헌재가 적극 확정하기 어려운 부분은 넘겨버려 자칫 발생할 반발의 빌미를 최소화하고 이견이 없는 국정농단 부분을 부각해 국민 설득력을 높이려는 취지로 분석된다.

◆최순실 사안 사실관계 3가지로 정리

헌재는 최씨와 관련된 사안을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 △이권 및 특혜 지원 △기밀자료 유출의 3가지로 세분했다.

헌재는 이 가운데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 사안은 ‘뇌물 저수지’와 ‘빨대’라는 틀을 갖고 얼개를 그렸다.

박 전 대통령과 최씨가 기업들에서 수백억원의 돈을 거둬들여 미르·K스포츠 재단을 설립한 뒤 ‘플레이그라운드’와 ‘더블루케이’란 회사를 통해 이들 재단의 돈을 빼내려 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미르·K스포츠가 ‘뇌물 저수지’라면 플레이그라운드와 더블루케이는 저수지에서 돈을 뽑아내는 일종의 ‘빨대’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헌재는 특히 “두 재단법인의 임직원 임면, 사업 추진, 자금 집행, 업무 지시 등 운영에 관한 의사결정은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이 했고 재단법인에 출연한 기업들은 전혀 관여하지 못했다”며 박 전 대통령의 관여 역시 인정했다.

헌재는 “미르와 K스포츠는 공익을 위해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모금한 것”이라며 고의성을 부정하는 박 전 대통령 주장에 대해선 “모금 과정에서 기업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었던 사항은 거의 없었고 막상 설립된 뒤 문화와 체육 분야에서 긴요한 공익 목적을 수행한 것도 없다. 오히려 실질적으로 최순실이 운영하면서 주로 최씨의 사익 추구에 이용됐다”고 반론했다.

박 전 대통령이 최씨 부탁으로 현대차 납품, KT 인사에 개입한 사안도 사실로 인정했다. 헌재는 “최순실의 요청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은 안종범을 통해 KT에 특정인 2명을 채용하게 한 뒤 광고 관련 업무를 담당하도록 요구했고 그 뒤 플레이그라운드는 KT의 광고대행사로 선정돼 KT로부터 68억여 원에 이르는 광고를 수주했다”고 설명했다.

헌재는 기밀자료 유출 부분에 대해선 “정호성은 2013년 1월쯤부터 2016년 4월쯤까지 각종 인사자료, 국무회의자료, 대통령 해외순방 일정과 미국 국무부장관 접견자료 등 공무상 비밀을 담고 있는 문건을 최순실에게 전달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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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국정농단, 중대한 위헌

헌재는 이같이 3가지 사안의 사실관계를 정리한 뒤 각 사안들이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하는지를 판단했다.

헌재는 “헌법은 공무원을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 규정해 공무원의 공익실현 의무를 천명하고 있고 이 의무는 국가공무원법과 공직자윤리법 등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고 전제한 뒤 “박 전 대통령의 행위는 최순실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한 것으로서 공정한 직무수행이라고 할 수 없으며 헌법, 국가공무원법, 공직자윤리법 등을 위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르·K스포츠재단의 설립 등은 기업의 재산권과 기업경영의 자유를 침해로, 기밀누설은 국가공무원법의 비밀엄수의무 위배로 판단했다. 헌재는 ‘문화융성’을 위해 미르·K스포츠재단을 설립했다는 박 전 대통령의 주장을 두고는 “재단 설립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면 공권력 개입을 정당화할 수 있는 기준과 요건을 법률로 정하고 공개적으로 재단을 설립했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또 공무상 비밀누설과 관련해 “몇 시간 후면 공개되는 말씀자료나 연설문 문구수정을 했을 뿐”이라는 박 전 대통령 측의 주장에 대해선 “대통령의 공적 발언이나 연설은 정부정책 집행의 지침이 되고 외교관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므로 말씀자료라고 해서 가볍게 볼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제18대 대통령취임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헌재는 이런 행위가 탄핵을 할 만큼 중대한 사안인지에 대해선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의 국정개입사실을 철저히 숨겼고 그에 관한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이를 부인하며 오히려 의혹 제기를 비난했다“며 “이로 인해 국회 등 헌법기관에 의한 견제나 언론에 의한 감시 장치가 제대로 작동될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또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등 최씨 사익 추구에 관여하고 지원했으며 그 결과 박 전 대통령의 지시를 따른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등이 부패범죄 혐의로 구속 기소되는 중대한 사태에 이르렀다고 강조했다. 헌재는 이런 사실이 “대의민주제 원리와 법치주의 정신을 훼손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헌재가 “박 전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진상 규명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했으나 정작 검찰과 특별검사의 조사에 응하지 않았고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도 거부했다”고 덧붙인 부분이다. 박 전 대통령이 잘못을 수정하거나 정직하게 고백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반성과 개선’ 의지를 보이지 않아 국민의 신뢰가 깨졌다는 얘기다. 헌재는 이를 두고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헌법과 법률 위배행위에 대하여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는 대신 국민을 상대로 진실성 없는 사과를 하고 국민에게 한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고 요약했다.

◆박 전 대통령측 비선실세론 비판

박 전 대통령 측은 탄핵심리 과정에서 “비선은 다른 정권에도 있었고 일반 국민 눈높이의 의견을 듣는 건 오히려 권장할 만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비선의 정치적 유용론’인 것이다. 그러나 헌재는 대통령의 헌법적 사명을 제시함으로써 이에 대해 반론을 펼쳤다. 헌재는 “공무원은 대의민주제에서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국가권력의 행사를 위임받은 사람이므로 업무를 수행할 때 중립적 위치에서 공익을 위해 일해야 한다”며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이자 국가 원수로서 가장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공무원이므로 누구보다도 ‘국민 전체’를 위하여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헌재는 “대통령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므로 특정 정당, 자신이 속한 계급·종교·지역·사회단체, 자신과 친분 있는 세력의 특수한 이익 등으로부터 독립하여 국민 전체를 위하여 공정하고 균형 있게 업무를 수행할 의무가 있다”며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 개인’의 이익을 위해 봉사했다고 은연 중에 비판했다.

◆세월호 7시간 의혹

헌재는 박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의혹에 관해서는 고심한 흔적이 역력했다. 결론적으로는 “세월호 참사 당일 박 전 대통령이 직책을 성실히 수행하였는지 여부는 탄핵심판 절차의 판단 대상이 아니다”라며 탄핵사유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의 대응조치에 미흡하고 부적절한 면이 있었다”고 에둘러 비판했다.

헌재는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는 재난상황이 발생하였다고 박 전 대통령이 직접 구조 활동에 참여하는 등 구체적이고 특정한 행위의무가 바로 발생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대통령은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 보호의무를 충실하게 이행할 수 있도록 권한을 행사하고 직책을 수행해야 하지만 구체적인 때에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는 대통령의 양심에 달려 있다는 얘기다. 이는 “대통령의 정치적 무능력이나 정책결정상의 잘못 등 직책수행의 성실성 여부는 그 자체로는 소추사유가 될 수 없다”는 기존의 헌재 선례와 궤를 같이하는 판단이다. 헌재는 다만 “세월호 침몰사건은 모든 국민들에게 큰 충격과 고통을 안겨 준 참사라는 점에서 어떠한 말로도 희생자들을 위로하기에는 부족하다. 세월호 사고는 참혹하기 그지없다”고 거듭 밝혀 법리상 한계에 따른 판단임을 설명했다. 

◆언론탄압 인용은 안 했지만 우회적 비판

헌재는 2014년 11월 ‘정윤회 문건’ 보도 이후 세계일보에 대한 청와대의 언론탄압에 대해 “이 사건에 나타난 모든 증거를 종합하더라도 세계일보에 구체적으로 누가 압력을 행사했는지 분명하지 않고 박 전 대통령이 관여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는 없다”고 결론냈다. 박 전 대통령이 세계일보 기사에 비판적 입장을 표명했다고는 볼 수 있지만 이러한 입장 표명만으로 언론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논리를 구성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하지만 헌재는 박 전 대통령의 언론에 대한 태도를 비판하는 구절을 곳곳에 배치, ‘언론 자유 수호’에 관한 의지를 드러냈다. 헌재는 “2014년 11월 세계일보가 정윤회 문건을 보도하였을 때에도 비선의 국정 개입 의혹은 거짓이고 청와대 문건 유출이 국기문란 행위라고 비판하면서 대외적으로는 최순실의 존재 자체를 철저히 숨기면서 그의 국정 개입을 허용했다”며 “(그렇기 때문에) 권력분립원리에 따른 국회 등 헌법기관에 의한 견제나 언론 등 민간에 의한 감시 장치가 제대로 작동될 수 없었다”고 꼬집었다. 이어 “국회와 언론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박 전 대통령은 잘못을 시정하지 않고 오히려 사실을 은폐하고 관련자를 ‘단속’했기 때문에, 피청구인의 지시에 따라 일한 안종범 등 공무원들이 부패범죄 혐의로 구속 기소되는 중대한 사태로 이어졌다”고 비판했다. 박 전 대통령이 언론탄압에 관여했다는 직접적 증거를 찾기 어려워 탄핵사유로 인정은 못했지만 비판 언론 탄압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인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선고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10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공무원 임면권 남용 인정 안 해

헌재는 노태강 전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장과 진재수 전 체육과장 등 최씨에게 협조하지 않은 공무원들에 대한 박 전 대통령의 ‘찍어내기’ 역시 인정하지 않았다. 헌재는 “노 국장과 진 과장이 피청구인의 지시에 따라 문책성 인사를 당하고 노 국장은 결국 명예퇴직하였으며 장관이던 유진룡은 면직됐고 대통령비서실장 김기춘이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에게 지시해 1급 공무원 6명에게서 사직서를 제출받아 그중 3명의 사직서가 수리된 사실은 인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헌재는 “노 국장과 진 과장이 최순실의 사익 추구에 방해가 됐기 때문에 인사를 했다고 인정하기에는 부족하고 유진룡이 면직된 이유나 김기춘이 6명의 1급 공무원으로부터 사직서를 제출받도록 한 이유 역시 분명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 역시 박 전 대통령이 관련됐다는 직접 증거를 찾기 힘들었다는 뜻이다. 아울러 △소추사실이 구체적이지 않고 △국회가 사실관계 조사와 토론없이 소추안을 의결했으며 △여러 개의 소추사유를 일괄적으로 의결한 건 위법하므로 각하해야 한다는 박 전 대통령 측 주장에 대해선 “탄핵사유가 명확하며 국회법에 조사와 토론은 재량적으로 하도록 돼 있고 표결방식도 국회의원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8인 재판관 선고는 위헌이란 주장 역시 “결국 심리를 하지 말라는 주장에 불과하고 탄핵소추에 따른 대통령의 권한정지상태라는 헌정위기 상황을 그대로 방치하는 결과가 된다”고 반박했다.

박현준 기자 hjunpar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