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前 대통령 깊은 침묵… 사저 복귀 않고 관저 체류

침통한 청와대, 향후 대책 논의/3시간 마라톤회의 했지만 거취 발표 등 메시지 없어/삼성동 기본적 시설 점검/복귀 시점·동선 합의 안 돼/野 “기록물 훼손말고 /떠나라”/관저 체류 장기화 우려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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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꺼진 청와대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된 10일 저녁 청와대 본관에 불이 꺼져 적막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삼성동 자택의 상황 때문에 이동하지 않고 관저에 머물렀다.
연합뉴스
헌법재판소가 ‘8대 0’ 전원 일치로 파면을 결정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은 10일 서울 삼성동 사저로 거처를 옮기지 않고 청와대 관저에 머물렀다. 박 전 대통령은 탄핵 인용 결정에 대한 공식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충격에 휩싸인 청와대는 하루 종일 할 말을 잃은 모습이었다. 청와대 참모들은 이날 각자 자신의 사무실에서 TV 생중계를 통해 헌재의 탄핵심판 선고 장면을 시청했다. 대통령 파면 결정이 내려지자, 긴장감 속에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선고문 낭독을 듣고 있던 청와대 관계자 사이에서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박 전 대통령도 관저에서 자신에 대한 파면 결정을 지켜본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된 10일 오후 청와대 분수대 앞에 수많은 취재진이 민간인 신분의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를 나서는 모습을 담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 관계자는 “삼성동 자택 상황 때문에 오늘은 이동하지 못한다. 박 전 대통령은 오늘 관저에 있게 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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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참모들은 헌재 선고 직후 한광옥 비서실장 주재로 수석비서관 회의를 열어 향후 대책을 협의했다. 장시간 회의가 이어졌음에도 뚜렷한 결론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며 참모들은 “드릴 말씀이 없다”는 말만 취재진에게 반복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박 전 대통령 측이 헌재의 결정에 불복하고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그러나 헌재에 대한 재심신청이 받아들여진 사례가 없기 때문에 실효성이 떨어지는 데다 재심을 강행하더라도 청구사유 등을 정하는 문제를 놓고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거취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데 소극적이어서 참석자들 사이에서 적극적인 의견 개진이 어려운 분위기였다는 전언도 나온다.

청와대는 결국 3시간 가까운 마라톤 회의 끝에 박 전 대통령의 향후 거취와 관련한 계획 발표를 미루기로 결정했다. 박 전 대통령 측 관계자는 “삼성동 상황 때문에 오늘(10일)은 이동하지 못하고 관저에 있게 된다”며 “일단 입장 발표나 메시지 전달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삼성동 사저의 경우 화장실과 보일러 등 기본 시설에 대한 점검만 마쳤고, 경호 준비는 전혀 진행하지 못한 상태다. 이날 오후 삼성동 사저에서는 정장 차림의 청와대 총무비서관실 직원들이 베이지색 상자 등 짐을 옮기는 모습도 포착됐다. 박 전 대통령이 사저에 도착하기 전 미리 물건을 옮겨두고 사저에 필요한 물품들을 확인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11일에는 서울 도심 곳곳에서 대규모 집회·시위가 벌어져 경호가 까다로워질 수 있다는 점에서 박 전 대통령의 사저 복귀가 며칠 더 미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정치권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헌재 결정에 대한 입장도 내놓지 않은 채 그대로 관저에 머무는 상황에 대한 비판여론이 쏟아져나왔다. 국민의당은 장진영 대변인은 논평에서 “박 전 대통령과 비서실장이 보여 온 수사방해 행태를 볼 때 대통령 기록물과 청와대 비서실의 기록물을 훼손하거나 은닉할 개연성이 매우 크다”며 “대통령 기록물에 손대지 말고 속히 청와대를 떠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자유한국당 내부에서도 청와대가 탄핵 기각 내지 각하 결정에만 무게를 둔 탓에 파면 선고 이후 시의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국당 핵심 관계자는 “참모들은 혹시 모를 만약의 사태까지 대비하라고 곁에 두고 일을 시키는 사람들인데, 대통령이 탄핵된 마당에 와서도 팔짱만 끼고 아무 말도 못하면 참모 자격이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반면 청와대 내부에서는 박 전 대통령 측 대리인단에 화살을 돌리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대리인단이 ‘태극기 집회’를 포함한 보수층 여론전에 집중하다가 정작 탄핵심판의 법리 대응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박세준 기자 3jun@segye.com